지금까지 함께 일했던 기획실 직원 중에 재미있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다른 출판사의 사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항시 어깨까지 오는 단발에 혁띠 대신 멜빵을 매고 다녔다.
차림새 못지않게 생각도 자유 분방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많이 내던 친구였다. 더불어 성취욕도 강해 우리회사의 자매 출판사 사장직을 요구한 적도 있는데 당시 충분히 이끌어갈 사람으로 판단은 되었으나 요구를 들어주지는 못했다.
그 못지않게 회사에 공헌한 사람이 있고 순위를 가리자면 차선이었기 때문이다. 책 제목이 떠오르지 않을 때 그가 취한다는 방법이 기억에 남는데 다름아닌 면벽 정좌다. 면벽을 해서 몇 시간이고 한 가지만 생각하면 어느새 답이 보인다고 했다. 그 말은 나도 충분히 공감했다.
사람이 한 가지 일에만 심취해서 자나깨나 그 일만 생각하고 매달리다 보면 더러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특별한 아이디어도 떠올리게 된다. 예림당이 아동도서 전문 출판사 중에서 비교적 새로운 유형의 도서를 여러 번 처음 시작할 수 있게 된 것도 어디를 가든 `어떤 책을 낼까?`를 밤낮없이 생각하고 구상했던 덕분이 아닐까 싶다.
나는 지금도 직원들에게 `새로운 건 뭐 없나?` 하고 자주 묻는다. 기획회의를 할 때마다 언제나 한결같이 강조하는 말도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똑같이 따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남을 따라 하기는 쉽지만 그렇게 해서는 아무리 잘해야 2등이지 결코 1등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985년 7월, 일본 출판계를 둘러보고 온 나는 일본의 유명한 서점 삼성당에서 산 애니메이션 그림책 5권을 편집부에 주었다. 이 책을 기초로 신간을 기획해 보라는 뜻이었다. 편집부에서는 그림이 너무 예쁘다고 탄성을 지르며 책을 그대로 복사해서 내자고 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단순히 번역하고 복사해서 낼 것이 아니라 이것을 기초로 우리 정서에 맞도록 새로운 걸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일본 책과 큰 차이는 없었지만 그렇게 해서 1985년 11월 `이야기극장` 5권이 만들어졌다.
그 이전부터 나는 토이북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을 생각하고 있었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평범한 책으로는 승부할 수 없다. 눈으로 보고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장난감 같은 책은 만들 수 없는 것일까` 이것이 나의 고민이었다. 그러면서 사회 분위기 전반을 살피다가 녹음기에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녹음기 붐이 일고 있었다. 야외에 갈 때도 너나없이 녹음기를 들고 다닐 때였고 휴대용 카세트 녹음기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여기에 착안한 나는 이야기극장에 녹음 테이프를 곁들여 보자고 했다. 그러자 영업부 일부에서는 반대를 했다. 그렇게 하면 가격 부담이 높아져 수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녹음기는 청소년이나 어른들용이지 유년용이 아니라고 했다.
나름대로 공감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유년이야말로 새로운 `오디오 세대`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해서 책 2권 내용을 테이프 앞뒤면에 1권씩 녹음해서 책 2권과 테이프를 세팅하기로 했다. EBS 성우들을 섭외 하여 드라마처럼 재미있게 녹음을 하고 역시 방송국 엔지니어에게 부탁하여 배경음악과 효과음을 입혔다.
12월1일 서점에 내보내기 시작한 이야기극장 테이프 세트는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인기가 폭발했다. 맨 처음 테이프 생산은 서라벌 레코드사에서 했는데 도무지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서 유니버샬 레코드사, 문화교연 등에서 나누어서 생산했다.
유아용 이야기극장은 그 뒤 세계명작동화에서 전래동화, 성경이야기, SF물 등 총 54권을 냈는데 1985년부터 1995년까지 10년 동안 제작한 부수가 4,100만부나 됐다. 제본소 한 곳은 일년 열 두 달 이야기극장만 제본하는 곳도 있었다. 아마도 단일 시리즈 형태로 우리나라 출판사상 최대부수가 아닌가 싶다.
<현상경기자 hs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