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5월 4일] 중소형 '헌 집' 가진 죄

모두가 만족하는 대안이 없는 줄은 안다. 이 정부가 부동산 정책의 핵심을 보금자리주택 공급 확대에 맞추면서 무주택자들은 환호하고 있지만 다른 쪽에서는 씁쓸해하는 사람도 많다. 중소형 주택을 가진 사람들이다. 부자들이야 제 돈 내서 더 좋은 요지에, 더 큰 집을 사면 되겠지만 달랑 중소형 주택 하나 갖고 있는 서민은 보금자리주택의 청약기회조차 없으니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 이들도 시세의 절반 수준에 강남에 집을 마련하고 싶어한다. 새집 입주자 매물에만 대출특혜 이들 가운데 집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빚더미에 오른 사람도 있고 근근이 입에 풀칠하는 사람도 있다. 행여 은행예금이 몇 억대에 이르는데도 단순히 청약저축에 가입한 무주택자라는 이유로 보금자리주택에 당첨된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속 터질 일이다. '집이 있고, 없음'이 아니라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서민 여부가 갈려야 마땅한데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참는 것은 보금자리주택 정책이 어떻게든 집 한채 마련해보려고 평생을 무주택자로 산 사람들을 위한 대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의 울화가 더 치밀게 생겼다. 미분양 해소와 주택거래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내놓은 '4ㆍ23 부동산 대책' 때문이다. 정부는 거래 활성화를 위해 새 아파트에 들어가는 사람이 내놓은 중소형 매물을 사는 사람들에게 국민주택기금을 통해 최대 2억원까지 대출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집이 안 팔려 난리인데 새 집에 들어간다는 이유로 기존 집도 쉽게 팔 수 있게 됐으니 새 집에 들어가는 사람만 좋게 됐다. 누군들 새 아파트에 들어가고 싶지 않겠는가. 단지 값 비싼 새 아파트는 엄두가 나지 않아 헌 아파트라도 조금 늘려보고 싶은 게 중소형주택을 가진 사람들의 현실이다. 이들은 집을 늘리고 싶어도 기존 집이 안 팔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새 아파트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매물까지 역차별받게 됐으니 "세상에 이같이 불공평한 정책이 또 어디 있느냐"고 반발할 수도 있겠다. 이번 정책 때문에 헌 아파트를 가진 사람이 헌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괄시하는 아이러니한 구조도 만들어지게 생겼다. 대출을 더 받기 위해서 새 아파트에 입주하는 사람의 매물만 찾을 것이니 말이다. 다행히 기존 집을 팔아 이런 매물을 잡으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새 아파트에 입주하는 사람이 내놓은 '입주자 매물'을 구입하는 1주택자의 경우 2년 안에 기존 주택을 팔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 5.2%의 국민주택기금 대출이자에서 1%포인트의 가산금리가 더해진다. 최악의 경우 가산금리를 물지 않기 위해 급매로 처분해야 하는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물론 기존 집이 안 팔려 새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 때문에 건설업체 자금난이 심화되는 악순환을 조금이나마 줄여보려는 의도라는 것은 이해한다.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대출규제를 전면적으로 완화하는 것도 부담이 됐을 터다. 헌 아파트 역차별에도 관심을 하지만 같은 매물인데도 새 아파트에 들어가는 사람이 내놓은 매물인지 아닌지 여부에 따라 대출규제와 지원을 달리한다는 것은 너무 궁색하다. 거래활성화라는 명분을 살리기에도 미약하다. 새 아파트보다 거래 안 되는 헌 아파트가 더 많고 1년 넘게 매물로 쌓여 있는 것도 부지기수다. 그 속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집을 조금이라도 늘려 보고픈 중소형 헌 아파트를 가진 사람들이다. 앞으로 이들은 새 아파트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도 가슴 아픈데 급매로 집도 팔고, 부동산 중개업소를 돌며 '새 아파트 입주자용 매물'을 찾는 발품도 팔아야 할 판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