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1월23일] 월터 리드


[오늘의 경제소사/11월23일] 월터 리드 권홍우 편집위원 미국ㆍ스페인 전쟁, 파나마 운하, 서재필, 그리고 모기. 관계없어 보이지만 겹치는 부분이 있다. 공통분모는 월터 리드(Walter Reed). 신의 저주로만 알았던 황열병을 퇴치한 사람이다. 1851년 감리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리드는 버지니아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군에 들어갔다. 관심 분야인 미생물학과 세균학을 공부하는 데는 군의관이 적격이라는 판단에서다. 리드가 진가를 발휘한 무대는 미국ㆍ스페인 전쟁. 미군 사망자 5,642명 중 전사자 379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황열병으로 죽어나가자 리드 소령은 원인 규명에 나섰다. 고열과 발작에 시달리다 사망에 이르는 황열병이 모기를 매개로 해 전염된다는 쿠바 의사 카를로스 핀라이의 학설을 신봉한 리드는 동료 의료진과 병사들을 상대로 인체실험에 들어갔다. 실험 결과에 따라 예방책을 펼치자 모기와 황열병이 사라졌다. 정작 미국에서는 성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인체실험 중 의사와 간호사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건강이 나빠진 리드도 복막염이 겹쳐 1902년 11월23일 죽었다. 잊혀지던 모기퇴치법이 살아난 곳은 파나마. 프랑스에서 운하 건설권을 사들였지만 황열병 때문에 노동자 1,000명당 167명씩 죽어나가는 환경에 고민하던 미국은 리드의 처방을 택했다. 덕분에 파나마의 황열병은 1907년 자취를 감추고 운하도 뚫렸다. 뒤늦게 리드의 공적을 깨달은 미국은 ‘월터 리드 육군병원’을 세워 그를 기렸다. 요즘은 첨단의학연구소로도 유명한 이곳은 한국인의 기억에 196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 박사가 사망한 장소로 남아 있다. 리드 자신도 한국과 인연이 있다.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 박사가 쿠바전선에 종군의사로 참전했으며 리드 밑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고 전해진다. 입력시간 : 2006/11/2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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