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박흥진의 할리우드 21]

[박흥진의 할리우드 21]나탈리, 70~80년대 마약중독자였다 벨벳감촉의 음성을 지녔던 전설적 가수 냇 킹 코울의 딸로 그래미상 수상자인 가수 나탈리 콜(50)은 자신은 대학생때부터 80년대초까지 20년간 마약과 약물중독자였다고 고백했다. 나탈리는 21일에 발간될 자서전 `내 어깨위의 천사'에서 이같이 밝히고, 자신은 어릴 때 가족의 한사람으로부터 성적 희롱을 당했으며 한때 창녀들을 위한 삐끼 노릇까지 했다고 말했다. 5남매중 둘째로 태어난 나탈리는 자기를 `스위티'라고 부르는 아버지의 끔찍한 사랑을 받으며 호사를 누리며 성장했다. 책에서 나탈리는 1960년 아버지가 엘리자베스여왕을 위해 노래 불렀을때는 런던의 최고급 사보이호텔서 묵었고 LA의 백인부자동네 핸콕파크지역에 있는 자기집의 아이들 놀이방에는 없는게 없었다고 회고했다. 나탈리는 그러나 아버지는 어렸을때의 자기에게 `모나 리자'같은 로맨틱한 노래는 불러주지 않고 자기를 웃기려고 말도 안되는 노래를 불러주었다고 덧붙였다. 나탈리의 약물복용은 1965년 골초였던 아버지가 폐암으로 사망했을 때 슬픔을 못견뎌 시작됐다. 당시 나탈리는 매사추세츠대학생이었는데 아버지가 그리워 마라화나와 LSD에 손을댔다는 것. 1972년 대학졸업후 뉴욕의 클럽에서 노래부르면서 헤로인을 시작했고 1년뒤에는 완전히 중독자가 되고 말았다. 이때 나탈리는 마약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거리 창녀의 삐끼노릇을 했다고 자서전은 전했다. 나탈리는 1975년 25세때 데뷔앨범 `인세페러블'로 대뜸 그래미상을 받은 뒤에도 작곡가인 남편과 함께 코케인에 빠져 `베벌리 힐즈의 코케인 주방장'이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중독증세가 악화되면서 레코드판매도 부진하고 돈도 다 날리고 남편과 이혼까지 하게됐는데 1987년 약물에 취해 차를 몰다 LA의 선셋거리에서 차가 뒤집혀지는 사고를 냈다. 이 사고 이후 나탈리는 미네소타의 약물중독치료소에 입원, 1984년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다고 자서전은 말했다. 90년초부터 나탈리는 가수활동을 재개, 91년 아버지의 생전 노래에 맞춰 노래한 2중창 앨범 `언포게터블, 위드 러브'로 다시 그래미상을 탔다. 이 노래는 팝과 재즈차트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었다. 그러나 그의 개인생활은 불행해 1995년 레코드 제작자로 자기를 학대해온 두번째 남편 안드레 피셔와 이혼했고, 남동생이 에이즈로 사망하는 불운을 겪었다. 나탈리는 또 자기와 어머니 마리아(78)와의 소원한 관계에 대해서도 적었는데, 두사람은 최근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송을 매듭지었다. 나탈리는 책에서 아버지의 영혼이 자신의 안내천사였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고 아버지의 천사들은 내가 편안할때와 곤경에 처해있을때를 따지지 않고 늘 나와 함께 있어왔다고 덧붙였다. 한편 7일에는 나탈리의 가수생활 25주년을 맞아 그의 최신앨범 `나탈리 코울의 걸작노래'가 나왔다. 그리고 12월 10일에는 자서전을 TV영화로 만든 `나탈리 코울 이야기'가 NBC-TV를 통해 방영된다. 이 영화에서 나탈리는 자기 자신으로 나온다. /한국일보 LA미주본사 편집위원 미 LA영화비평가협회원입력시간 2000/11/06 18:09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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