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10월 30일] 품격있는 음주문화

TV 사극을 보면 자주 등장하는 장소가 있다. 서민들이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주막(酒幕)’이다. 반면 중국에서는 이와 같은 장소를 ‘반점(飯店)’이라고 부른다. 먹거리를 중시하는 중국과 한잔 술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와의 미묘한 문화적 차이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보약이 되고 지나치게 마시면 독이 된다’는 말이 있다. 술은 묘한 마력을 갖고 있어 술 한잔에 서로 속내를 내보이며 오해를 풀기도 하고 서먹한 자리가 금세 흥겨워지기도 한다. 오죽하면 술을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한 필수요소라고까지 하겠는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술 문화가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얼마 전 언론보도에 따르면 과도한 음주에 따른 사회ㆍ경제적 손실이 연간 20조원에 이르는데다 알코올 관련 사망자가 하루 평균 13명에 달할 정도로 폐해가 심각하다. 실제로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는 사람이 술을 마시는지 술이 사람을 마시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폭음을 하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동서양을 통틀어 매우 독특한 관습이라고 한다. 역설적인 것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술 문화에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엄격한 법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린이들의 행동 법도를 가르치는 ‘소학(小學)’에도 술 마시는 예절에 관한 내용이 들어가 있을 정도로 올바른 주도를 중히 여겨 술로 일어나는 다툼이나 흐트러진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었다고 우리의 품격 있는 술 문화마저 변해서는 안 될 일이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덕무는 그의 저서 ‘사소절(士小節)’에서 “훌륭한 사람은 술에 취하면 착한 마음이 나타나고 조급한 사람은 술에 취하면 사나운 마음을 드러낸다”고 했다. 술을 마시면 그 사람 본래의 숨겨진 성품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필자는 사람이 한평생 마실 수 있는 술의 양은 일정하다고 믿는다. 예컨대 젊어서 너무 많이 마시면 나이 들어 그만큼 술을 즐길 수 없다는 의미이다. ‘술 앞에 장사 없다’고 하지 않는가. 타인을 배려하며 절제할 줄 아는 음주문화를 만들어보자. 우리를 위해, 그리고 우리의 일상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후손을 위해 이제 왜곡된 음주문화는 과감히 버릴 때가 됐다. 이덕무의 눈에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가. 훌륭한 사람인가 아니면 조급한 사람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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