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은행을 향하여] "최소한의 규제장치는 필요…"
자본시장통합법으로 금융장벽 허물어 지지만…
월가(街) 금융회사들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탄생시키며 글로벌 금융시장을 200년 이상 장악해 왔다. 이들이 청산 또는 사업 분리 등 굴욕적인 운명을 맞게 된 데는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탓도 크지만 금융규제가 미흡했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수익 확대 및 천문학적인 보상에 눈이 멀어 내부 통제 기능이 떨어져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 더욱이 미국 금융당국이 시장방임주의를 내세워 금융규제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리스크 관리는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미국 경제는 지난 1929년 대공황을 맞았다. 당시 2만5,000개에 달했던 상업은행은 5년 뒤 1만4,000개로 급감했다. 근로자 4명 중 1명이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로 내몰렸다. 미국 경제의 30%가 사실상 붕괴됐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부리나케 대책을 마련했다. 금융시장을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더 큰 파국을 초래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미국 금융당국과 의회는 ‘천하의 무법자’가 떠오른 월가 은행들에게 메스(수술용 칼)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이 같은 시대상황과 분위기를 반영해 탄생한 것이 ‘글래스-스티걸법(法)’이다. 지난 1933년 도입된 ‘글래스-스티걸법’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간에 방화벽(firewall)을 설치한 게 골자다.
당시 월스트리트의 금융황제로 군림하고 있었던 JP모건은 제살을 깎아내는 아픔을 무릅쓰고 회사 분리를 받아들였다. 결국 JP모건은 상업은행, 모건스탠리는 투자은행으로 각각 정해진 운명의 길을 가게 됐다.
하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월가 은행들은 반기를 들었다. JP모건ㆍ시티그룹 등 상업은행들은 틈만 나면 “‘글래스-스티걸법’이 금융시장 환경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며 법안을 폐지하라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의회를 회유하기 위해 수억 달러의 로비자금이 사용되기도 했다.
결국 클린턴 행정부는 기존의 금융산업 규제 일변도에서 벗어나 금융 규제에 대한 완화 입장을 보이며 월가를 다독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1999년 ‘글래스-스티걸법’은 운명을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파생금융상품 부실로 미국의 금융회사들이 공멸의 위기를 맞게 된 데는 이런 정부의 규제 완화가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미국의 사례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올해부터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서 금융업간의 업무영역과 장벽이 허물어진다.
상당수 금융전문가들은 “시장자율에 따른 자기교정능력을 맹신하기 보다는 부작용과 문제점을 선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제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업은행과 IB은행의 결합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은 틀림 없지만 최소한의 규제장치는 필요하다는 얘기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신용창출 및 레버리지 효과가 큰 파생금융상품에 대해 금융당국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과 틀을 마련해주어야 한다”며 “정부가 시장만능주의의 신봉자가 되어서는 곤란하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맹신해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국내 은행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국내 금융산업과 은행 지배구조에 맞는 금융규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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