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비자금 의혹 등과 관련해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할 뜻을 내비침에 따라 향후 정 회장의 위상과 그룹의 경영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은 그동안 일부의 지적에도 불구, 주요 사안에 대해 정 회장이 직접의사 결정을 하는 경영 시스템을 유지해와 이번 수사 결과 정 회장의 위상에 변화가있을 경우 경영에도 상당한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 정 회장에 의존하는 의사결정 시스템 = 1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그룹가운데 몇몇은 중요한 사안에 대해 전문경영인이 결정을 내리고 오너는 최후에 승인만 하는 경영 시스템으로 전환했지만 현대차그룹은 지금까지 정 회장이 직접 의사결정을 하는 체계로 운영돼 왔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기획총괄, 국내외 판매 및 기획, 품질 및 생산.기술, 연구.
개발, 재경, 구매, 해외사업 등 부문별로 담당 부회장이나 사장, 부사장을 두는 조직체계다.
또 현대제철이나 현대모비스 등의 계열사들은 외형적으로는 회사별로 사장이나부회장이 경영을 책임지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예산 집행 등 일상적인 경영은 이들 경영진의 결정에 따라 이뤄지지만부문이나 계열사별 신공장 건설이나 신차 프로젝트, 신기술 개발 등 대규모 투자가수반되는 주요 사업은 정 회장이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경영 시스템이다.
2002년 중국 자동차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한 일부의 반대 속에 베이징에 합작공장을 설립하고, 지난해에는 과거 캐나다에 공장을 세웠다 판매부진으로 6년만에문을 닫았던 '브로몽의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그룹 안팎의 우려 속에 미국 앨라배마공장을 준공한 것도 정 회장의 결정이었다.
정 회장은 또 지난해 신형 그랜저를 4월 서울모터쇼 신차발표회와 함께 출시하자는 의견을 무시하고 품질을 좀 더 보완한 뒤 시판하자는 다른 쪽의 주장을 받아들여 결국 3천억원 가량의 매출 감소를 감안하면서도 출시를 다음달 중순으로 늦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밖에 현대제철이 최근 당진공장에 일관제철소 건립을 추진하게 된 것도 고(故)정주영 명예회장의 '숙원사업'을 이루려는 정 회장의 강한 '의지'로 인해 가능하게됐다.
이는 일부의 경우 현재까지 '성공적인 결정'으로 평가받고 있고, 일부는 여전히'결국 실패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 속에 추진되고 있지만 현대차그룹의 경영시스템과 정 회장의 역할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 '위기 자초?'..정 회장 위상 변화때는 파장 = 그동안 현대차그룹 안팎에서는이 같은 경영 시스템의 불합리성과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이 같은 경영 시스템이 업무의 추진력과 신속성을 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반대로 위험 부담도 크다" "결국 경영권을 놓지 않으려는 의도다"라는 등등이 그런맥락에서 나온 지적들이다.
최근 검찰 수사 이후에는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 안팎에서는 당장 이같은 경영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해 검찰의 이번 수사로 인해 정 회장의 위상에 변화가 있을 경우 그룹 경영에 상당한 파장이 일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다.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일각에서는 정 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될 경우 사법처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시스템에 의한 의사결정구조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룹 회장직 유고로까지이어지면 부문별 담당이나 계열사별 경영인체제로 바뀐다하더라도 '책임과 권한'의문제가 발생, 그룹의 '경영 공백'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현대차그룹 안팎의 우려다.
또 정 회장이 회장직은 유지하더라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거나 하는 등의경우에는 투자를 비롯한 경영 활동이 위축될 수 밖에 없고 글로벌기업으로서의 현대차그룹에 대한 대외 신인도와 이미지 추락 등으로 경영에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이달 18일 열린 예정이던 현대차의 중국 제2공장 착공식과관련해 "중국사업은 사실상 중국 정부와의 5대5 합작사업인 데 정 회장이 행사에 불참할 경우 신인도 하락으로 인해 향후 사업 추진에 차질이 예상된다"며 걱정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