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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 이른바 '피그스(PIIGS)' 국가들의 재정 불안으로 유로화( € )의 미래에 대한 우려도 증폭되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장기간에 걸친 통합 노력에 힘입어 지난 1999년 유럽 단일통화로 출범한 유로화는 탄생 11년만에 최대의 시련을 맞고 있다. 유로화는 지난해까지만해도 월가발(發) 금융위기를 틈타 초강세를 보이며 미국의 달러를 대체할 제1의 기축통화로 떠오르기도 했으나 올들어서는 하락세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 연말까지 유로화가 달러에 대해 1.20달러선 이하로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유로화에 대한 우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유로화를 탄생시킨 유럽경제통화동맹(EMU)이 결국 붕괴할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마저 나올 정도다. '하나의 유럽'을 향한 유럽국가들의 오랜 꿈이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 유로화도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비관론이다. 하지만 유로존 국가들이 유로화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유로 사수 의지도 확고하기 때문에 "유로화가 역사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란 주장이 아직은 설득력을 갖는다. ◇스페인은 유로존의 미래 가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 최근 유럽 재정위기의 전이를 막기 위해서 EU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공동으로 최대 7,500억유로의 지원대책을 내 놨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의 디폴트(지급불능)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비록 시장의 패닉(Panic)은 막았으나 ▦위기를 불러일으킨 재정ㆍ외채 문제는 전혀 해결된 게 없고 ▦국가 부채를 줄이기 위한 뚜렷한 재원 조달 방법이 제시되지 않았으며 ▦피지원국들의 도덕적 해이의 문제가 여전한 것으로 지적된다. 일부 분석가들은 이번 피그스(PIGS) 위기가 지난 2008년 당시 월가발 금융위기의 재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AFP 통신은 지난 5일 BNP파리바의 애널리스트들을 인용, "그리스가 월가발 금융위기의 전조였던 베어스턴스라면, 포르투갈은 이를 촉발시킨 리먼브러더스에 해당하고, 스페인은 대마불사 논란을 낳았던 AIG"라고 비유했다. 통신은 특히 "스페인은 EU가 그리스발(發) 재정위기의 전이를 막을 수 있는지 여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면서 "EU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대한 시장의 불신을 얼마나 차단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스페인은 국가부채 규모가 GDP의 70%에 이르며 지난 2008년 금융위기이후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포르투갈 역시 국가부채가 GDP의 90%에 가까워 또 다른 재정 위기 가능성이 높은 국가로 꼽힌다. ◇재정 위기의 본질은 지급능력 부실 = 유럽의 재정위기가 앞으로도 계속 글로벌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일시적인 유동성(Liquidity) 부족에 따른 현상이 아니라 오랜 기간 누적된 정부의 재정적자에 따른 지급능력(Solvency)의 부실 때문이다. 예컨데 1,100억유로의 구제기금 지원이 결정된 그리스에 대해 아무리 많은 유동성이 지원된다 하더라도 재정적자를 누적시키는 구조적인 원인이 제거되지 않으면 언제나 위기는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13년 그리스의 국가 채무는 GDP의 150%인 3,600억유로에 달해 국채 평균 금리를 6%로 잡더라도 이자를 지급하는 데만 GDP의 약 9%를 지출해야 할 형편이다. 이는 그리스 정부 세수의 25%를 차지하는 것으로 원천적으로 존립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2013년 5월초까지 만기 도래하는 그리스의 채무는 700억유로이며, 그리스가 약속한 재정적자 감축목표를 모두 지킨다 해도 3년간 총 500억유로에 달하는 누적 재정적자를 채권발행을 통해 메워야 한다. 이런 금액을 합친 것만 해도 1,200억유로에 달해 이미 유럽에서 승인된 지원규모 1100억유로를 웃돈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1990년대 중반 외화 유동성의 부족으로 일어난 아시아의 외환위기와는 달리 80년대 줄곧 재정 운용의 미숙에서 여려 차례에 걸쳐 되풀이된 중남미의 외채 위기와 유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불안한 유로화의 미래 = 이런 가운데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재정구조가 취약한 나라들이 앞으로 또 궁지에 몰리게 되면 유로화를 버리고 유로존을 이탈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유럽 단일통화인 유로의 울타리에 묶여 자체 환율정책을 쓸 수 없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럽통화동맹을 탈퇴, 독자적인 화폐를 부활시킬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독자적인 화폐를 사용하게 되면 위기시 자국통화를 크게 절하시켜 수출을 늘리고 경상수지 흑자를 만들어 냄으로써 경제난국을 타개할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난 90년대 중반 한국 등 아시아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지만, 그리스는 현재 유로의 틀 안에서 환율정책을 쓸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과도한 노동비용 감축에 의존한 수출 경쟁력 확보에 주력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 그리스 국민들의 파괴적인 반발과 저항을 낳고 있다. 유로존의 맏형격인 독일의 이탈도 점쳐지고 있다. 재정수지가 좋은 국가들이 재정수지가 나쁜 국가에 지원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구조에서 재정부담이 많은 독일 등이 유로존을 전격 이탈해 유로화 체제의 붕괴가 훨씬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의 집권당인 기독교민주당(CDU)이 지난 9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패배해 상원내 과반수 의석을 잃은 것도 적자재정이 만연된 그리스 등에 대한 '퍼주기'식 재정 지원이 국민들의 눈총을 샀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들 국가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독일 국민들의 불만이 유로존 탈퇴 요구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차기 유럽은행(ECB) 총재 물망에 오르는 악셀 베버 ECB 정책위원은 "결국 유로존이 단일통화경제권이라는 공동의 비전을 지키고 유지하려면 문제가 곪아터지기 전에 각국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회원국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유로는 고비를 잘 넘길 수도 있고 아니면 역사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칸 IMF 총재 제안 도미니크 스토르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유로존 회원국들간의 단기적인 재정이전(short-term fiscal transfers)을 골자로 하는 통합 예산관리 시스템의 구축을 제안했다. 칸 총재는 12일 보도된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유로존은 국경을 뛰어넘는 새로운 공동협력으로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금융시장 위기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는 회원국들이 단기적으로 서로 국가재정을 이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 방법이 독일 등이 그리스나 포르투갈 등을 지원하는 영속적인 합의계약보다는 낫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은 사실상 유로존 16개 회원국을 공통된 재정정책의 틀 안에 놓이도록 하자는 의미로, 그간 유로존은 금융정책면에서는 유럽중앙은행(ECB)을 통해 조율하고 있지만 재정정책 면에서는 통일된 관리기구가 없어 회원국간 경제 불균형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칸 총재는 이어 "유로존은 이처럼 회원국간 재정이전을 체계화할 수단을 마련하고 더욱 강력한 감시체제도 갖출 필요가 있다"며 "유로존은 단일통화 체제의 영속을 위한 근본적인 개혁을 단행할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한 "개별 국가들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엄청난 자구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단지 유럽만이 아니라 전세계 많은 국가들이 현재 심각한 재정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평가했다. FT는 그러나 "이 제안은 유로존 경제의 단일통치를 달성하기 위한 큰 발자국으로 남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재정흑자국인 독일 등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칸 총재도 이날 독일 등이 일부 경제적 취약국가에 장기적인 재정이전을 하는 방안은 일단 거부했다. 올리 렌 유럽연합(EU) 경제통화 담당 집행위원도 이날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은 재정ㆍ경제정책 협력안을 밝힐 예정이다. 렌 위원은 유로존 국가들이 자국 예산안을 법제화하기 이전에 다른 15개 회원국들의 사전검토 및 승인을 얻도록 규정하는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FT는 전했다. 이승현기자 pimple@s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