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정부의 일괄적인 기업 외화대출 연장 요구에 대해 "자칫 금융부실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며 우려하고 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정부 요청에 따라 기업 외화대출 만기연장을 지속하려면 은행이 고금리 해외차입 부담을 떠안게 돼 경영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은행들은 특히 금융당국이 정부보증외화채권 발행을 독려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한 대형은행의 자금 담당 간부는 "지금 외화차입을 하려면 리보(LIBORㆍ런던은행 간 거래금리)에 무려 300~500bp의 가산금리를 얹어주면서 해야 하는데 이렇게 비싼 금리를 감수하면서까지 외화차입을 해야 할 상황이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은행의 외환 담당자는 "정부가 발행하려는 외평채도 미국 국채에 400bp나 얹어줘야 할 정도인데 왜 이렇게 고비용의 외화차입을 정부가 강요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들은 기업 외화대출 만기연장에 앞서 기업들의 외화차입구조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업들이 불필요한 외화차입은 먼저 갚을 수 있도록 지도하고 꼭 필요한 차입에 대해서만 은행들이 만기연장 등을 해주도록 정부가 지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18개 은행 기준 외화대출 잔액은 지난 2006년 말 362억달러, 2007년 말 385억달러, 2008년 말 431억달러, 지난 1월 말 427억달러로 집계됐다. 외화대출 잔액이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올 초까지도 2006~2007년보다 많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선발은행의 한 자금 담당 임원은 "한창 외화차입 비용이 저렴했을 때 상당수 중소기업들이 시설자금 용도로 외화대출을 받아놓고 사실상 환투기를 했는데 정부는 이런 기업들에 대한 옥석구분도 없이 일괄적으로 대출 상환을 미뤄주라고 한다"며 "수출입자금 외의 외화대출에 대해서는 감독당국이 좀 더 엄격히 감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또 "정부가 주장하는 데로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면 그것을 풀어서라도 먼저 불필요한 외화대출부터 정리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도 "기업 외화대출에 대한 일괄적인 만기연장이 일부 환투기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측면을 인정한다"면서 "오늘(8일)부터 외화대출이 원래의 용도대로 쓰여지는지 현장 조사를 나가 현황을 면밀히 따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