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는 통치의 핵심 코드로 분권(分權)을 내세운다. 과도한 권력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갖도록 하는 대신 국정을 시스템으로 운영한다는 구상이다.
청와대는 스스로를 더 이상 권력기관이 아니라고 했다.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은 “그동안 세간에서 말로만 듣던 무소불위의 힘과 영향력을 행사하던 청와대와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현재의 청와대’는 너무나 달랐다”고 소회하기도 했다.
검찰ㆍ경찰ㆍ국세청ㆍ국정원 등 이른바 ‘빅4’도 탈권력화가 한창이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이나 공판중심의 사법제도 개혁의 기저에는 검찰의 힘 빼기가 깔려 있다. 참여정부의 눈으로는 검찰의 권력은 ‘공공의 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이 ‘제도 이상의 권력을 휘두른다’고 지적하기까지 했다.
참여정부 국정 과제인 지역균형 발전론도 따지고 보면 분권논리로 수렴된다. 수도권에 몰린 과도한 인구와 경제력을 적절하게 안분하지 않으면 갈등과 반목의 엄청난 대가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노 대통령은 ‘서울이 살 만한 곳이 아니다’고 했다. 노 대통령이 한국의 그 어떤 두뇌집단도 속 시원하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한 ‘양극화 문제’도 결국 분권의 경제적 논리에 다름 아니다.
집권 세력의 힘 빼기는 견제와 균형의 작동,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정치에서는 없는 개념이다. 권력을 움켜지면 재집권하고 싶고 그렇게 하려면 지지층을 붙들어매면서 새로운 지지세력을 끊임없이 생산해내야 한다.
고위관계자가 청탁을 하지 않고 뇌물을 받지 않으며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해서 탈권력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데 동의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대통령의 ‘나쁜 뉴스’ 발언에 당ㆍ정이 서울대 때리기에 일제히 나서고 장ㆍ차관 자리를 여당의 ‘전국정당화’ 수단이라고 천연덕스럽게 설명하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여소야대 상황을 ‘정책적 탄핵’이라고 간주한다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도 한참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지역주의가 극복된다면 정권을 내놓겠다는 ‘대연정 제안’도 일견 분권론의 연장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은 연정론의 순수성을 몰라준다며 답답해 하지만 정작 국민들은 지역주의 극복과 정권을 맞바꾸겠다는 초헌법적 ‘빅딜’ 구상에 혀를 내두르는 게 사실이다. 과연 참여정부가 힘을 제대로 빼고 있는 것인지, 또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