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계의 사설/4월 25일] 에너지 쇼크

지난 20년간 낮은 유가 덕분에 적정 수준의 물가가 유지됐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나이지리아의 반군 무장세력이 송유관 두 곳을 공격한 후 지난 22일 미국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는 배럴당 120달러에 근접하며 최고치를 경신했다. 최근 원유 가격 상승은 과거의 오일쇼크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1973년 중동 산유국들의 석유금수 조치와 1979년 이란혁명으로 원유공급이 부족해지면서 공업국가들의 물가상승을 촉발했다. 하지만 지금의 고유가는 기본적으로 수요팽창에서 비롯됐다. 특히 아시아의 소비가 늘어난 탓이 크다. 공급부족으로 인한 오일쇼크보다는 덜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국제유가는 1999년 배럴당 19달러로부터 꾸준히 올랐다. 뒤집어 말하면 그동안 세계는 인플레이션이나 경기침체 없이도 유가상승에 대응할 능력을 갖췄음을 뜻한다. 고유가 때문에 산유국들이 풍요로워지는 사이 수입하는 쪽은 가난해지고 있지만 원유를 제외한 물가가 안정적이고 근로자 임금 인상이 없다면 유가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적은 셈이다. 공업국들의 에너지 효율이 1970년대에 비해 높아지면서 고유가의 영향이 줄어든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는 유가가 오를수록 빗나가고 있다. 유가가 배럴당 30달러에서 60달러로, 혹은 60달러에서 120달러로 오르던 시절에는 유가상승의 충격을 쉽게 흡수했지만 현재 1% 유가상승이 갖는 의미는 엄청나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원유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9년 0.5%에서 2007년 1.7%로 늘어났다. 인플레이션 위험성도 그만큼 커졌다. 고유가시대가 곧 끝날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도 품을 만하다. 고유가로 미개발 유전이나 대체에너지 투자에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투기로 인한 유가상승분이 꺼진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공급량은 크게 늘지 않을 전망이다.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생산량을 늘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러시아도 앞으로 몇 년간 증산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추가생산에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산유국들이 증산을 거부함으로써 신용경색을 부추기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지나치게 문제시할 필요는 없다.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기대를 잘 조정한다면 유가상승의 충격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유가를 잡겠다며 함부로 금리를 인하할 경우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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