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UPGRADE 한국의 노사문화] 2-3.국민적 합의로 성장엔진 재가동 ② 스웨덴

깨끗하게 단장한 건물. 1층 메인도어를 열고 들어서면 눈에 띠는 널따란 응접실. 마치 고급 호텔에 들어온 듯 착각할 정도로 품위있게 단장돼 있는 이 건물이 스웨덴의 일반노동조합연맹(LO) 사옥이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롬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이곳은 다른 정부기관 사무실에 비해 월등히 앞선 시설을 갖추고 있어 스웨덴 노조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피부로 느끼게 했다. “노조연맹이 임금을 정했으며 회사측이 이를 수용해야 하는 것은 물론 노동계의 결정에 대해 정부도 개입할 수 없다. 하지만 노조가 책임감을 갖고 무리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임금인상폭을 결정한다.”(라스 폰 이에렌하임 스웨덴 산업부 노동환경담당관) 에릭슨ㆍ볼보 등 세계 유수 스웨덴 기업들이 노조의 엄청난 견제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스웨덴에서 노사문제를 푸는 칼자루는 바로 강력한 힘을 구축한 노조가 갖고 있다. 하지만 사전에 노사정이 충분한 협의를 통해 이를 조절하고, 노조는 책임있는 결정을 내놓는 것이 통상적인 수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사회민주주의의 시험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스웨덴의 노사관계는 노동문제로 고심하는 한국에게 또 하나의 시사점을 던져준다. ◇유럽의 노조왕국, 하지만 불법은 없다= 스웨덴의 노동조합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그만큼 유럽내에서도 가장 강한 힘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100년간 노조와 사민당의 관계가 밀접했다. 당시 사민당은 정책을 진행시킬 충분한 힘을 갖췄으며 노조원들도 집권당의 정책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 결과가 안정된 노사관계로 나타난 것이다.”(어르얀 해네스쿠그 스웨덴 산업부 노동법 전문 부국장) 스웨덴의 노동운동 역사는 갈등과 견제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정부, 기업, 노동자 모두의 합의와 공감대에 의해 이뤄졌다는 말이다. 실제 사민당 정권의 노동부장관을 맡고 있는 한스 칼슨씨는 LO에서 대표로 활약한 경력을 갖고 있으며 사무직노조연맹(TCO) 출신들도 사민당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노조의 힘이 세지만, 노사가 정한 합의사항을 번복하거나 어기는 경우는 없다. 토머스 프레덴 LO 옴부즈만은 “노조가 사측과 계약한 기간동안 임금인상 등의 계약조건을 두고 파업을 할 수 없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불황을 넘은 노사정 합의= 스웨덴은 80년대 중반 이후 부동산과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경기과열 현상이 발생하면서 90년대초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위기를 맞았다. 스웨덴 정부가 85년과 89년에 실시한 금융ㆍ외환시장 개방에 따른 부작용이었다. 손성만 KOTRA 스톡홀롬 무역관장은 “스웨덴은 90년까지 완전고용에 가까운 실업률을 유지해왔으나 91년부터 실업률이 급증해 92년에 5.2%, 93년 8.2%, 94년 8.0%까지 상승했다”며 “크로나 가치의 폭락에 따른 평가절하로 95년부터 수출이 크게 늘어 실업률이 다소 낮아지고 경기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노사는 새로운 3자 협의제도를 모색했다. 당시 지난 50년대부터 계속됐던 노사간 중앙단체교섭이 83년부터 산별교섭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노사가 일괄적으로 임금협상을 타결짓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난 92년 사용자총연맹(SAF)과 LO, TCO, 전문직노조연맹(SACO) 등의 대표로 구성된 렌베르그위원회는 정부의 주관하에 임금안정화협약을 이끌어냈다. 이 협약은 중앙임금협상에는 노사정이 참여하되, 임금체결에서는 개별 노사의 자율권을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정부의 개입으로 LO가 요구한 중앙임금협상제도와 SAF가 주장한 분권화된 임금협상시스템이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렌베르그위원회는 이어 94년까지 임금을 억제토록 하는 노사간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김의탁 삼성전자 스톡홀롬법인장은 “스웨덴의 기업과 산업이 전통산업에서 첨단산업으로 탈바꿈하면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스웨덴 노동조합이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적극 협조한 사례는 인상적이었다”며 “경제회복의 가장 큰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새로운 3자 협의제도 모색= 지난 90년대 이후 스웨덴도 경기침체와 계속되는 재정적자로 복지정책을 줄여나가고 있다. 이에렌하임 노동환경담당관은 “유럽지역의 경제가 불황을 겪고 있어 현재는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과 실업률이 비슷해졌다”며 “재정이 줄어 실업자에 대한 교육도 축소됐고 회사들도 인력채용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스웨덴 정부는 1년 이상 몸이 아파서 일을 하지 못하는 병가휴가 지원금이 크게 늘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병가휴가 지원금은 평소 임금의 80~90% 수준으로 병가휴가자가 무려 2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제회복을 이어가기 위해 지난 99년 노ㆍ사ㆍ정이 임금ㆍ노동법은 물론 각종 경제정책에 대한 사회합의인 `성장을 위한 협약`을 이끌어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하지만 스웨덴 정부는 2000년에 만들어진 중재기구(Mediation Authority)를 통해 노사갈등을 조정하고 임금결정 시스템의 원활한 작동을 유도하는 등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고 있다. 강진정 스톡홀롬 한인회장은 “스웨덴이 정치ㆍ사회ㆍ경제적으로 지속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적극적인 중재로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다”며 “노사가 어려울 때마다 사회적 합의로 극복해내는 것이 스웨덴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사측과 협약 체결전 노조와 충분히 논의 연맹결정 불복 없어" 토머스 프레덴 스웨덴 일반노동조합총연맹(LO) 옴부즈만 “노동조합연맹이 사측과 계약을 맺기 전에 충분히 노조들과 논의하기 때문에 연맹의 결정에 노조원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법이 없다.” 스웨덴 일반노동조합연맹(LO) 옴부즈만으로 일하는 토머스 프레덴 씨는 스웨덴 노조의 성숙된 합의문화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프레덴씨는 “인력회사에 고용된 파견노동자들은 산별교섭에서 정해진 임금보다 적게 받고 일하고 있으나, 최근 대형 인력회사들과 협상을 통해 산별교섭 합의내용에 따르도록 해 노동시장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스웨덴 노동조합의 현황을 소개한다면. ▲모두 3개의 노동조합연맹이 있다. LO는 200만여명의 생산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조직돼 있으며 스웨덴 생산직 노동자의 85~75% 정도가 가입돼 있다. TCO는 사무직 노동자 150만명이, SACO는 60~70만명의 전문 고급인력이 노조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볼보의 경우 금속노조 소속이기 때문에 직종과 관계없이 모두 LO에 속해있다. -최근 유럽 국가들 대부분이 실업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스웨덴의 경우는. ▲현재 실업률은 4% 정도로 크게 높은 편은 아니다. 스웨덴에서는 여성의 85% 정도가 일을 하며, 포르투갈과 함께 여성 취업률이 아주 높은 편이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여성이 아이를 보는 일은 가사노동으로 무급이지만, 스웨덴에서는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지금과 같은 안정된 노사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계에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실업자들이 많아지면 노동시장위원회(AMS)라는 정부기관에서 직업교육,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통한 고용확대, 실업보험 등의 방법으로 구제에 나선다. LO에서 자체적으로 계획하는 것은 없다. -스웨덴도 유럽연합(EU)의 멤버가 되면서 노동시장의 변화가 많을 텐데. ▲역내 국가들의 인력이 많이 유입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언어문제 등으로 아직까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발틱 국가의 불법 체류 노동자들이 들어와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등 일부 문제를 만들고 있지만, 대부분의 일자리는 산별노조에 가입돼 있어 큰 문제는 안된다. [스웨덴의 단체교섭]최저임금 정하지 않고 여건맞춰 협상 최근 연봉제에 관심 "개별협약" 목소리도 스웨덴에는 최저임금을 노동법으로 묶어놓지 않고 있다. 각각의 사업단체와 노동조합이 각각의 여건에 맞춰 단체교섭으로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정하는데 기본적으로 고려하는 요인은 노동시간, 휴가일수, 과거의 임금 수준 등이지만 스웨덴은 여기에 보태서 숙련도를 꼼꼼히 챙긴다. 특히 직업훈련 정도를 매우 중요하게 따진다. 최근에는 이 같은 교섭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움직임도 있다. 대표적인 사회민주주의 국가인 이 나라가 구미 각국의 연봉제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 앞으로는 단체협약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개별협약에 의해 임금을 결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 분분하다. 스웨덴의 단체교섭 방식을 살펴보면 이 나라 노동문화의 역사를 고스란히 알 수 있다. 이 나라는 기본적으로 노조의 힘이 워낙 막강해 모든 노사문제는 단체교섭으로 협의한다. 사용자도 노동자도 노조를 통한 교섭 결과에 흔쾌히 승복하는 것이 오랜 전통처럼 자리잡고 있어서 가능한 문화다. 스웨덴의 단체교섭 형태는 크게 산별교섭과 지부별교섭으로 구분된다. 지난 80년대 중반까지도 일반노동조합연맹(LO), 민간부문노조교섭카르텔(PTK), 사용자협회(SAF)가 주축이 된 중앙교섭이 진행됐지만 이후 교섭창구를 산별 및 지부별로 분산시키면서 중단됐다. 산별교섭의 경우 단체교섭의 책임을 노조 집행위원회에 두고 있다. 대표적인 산별노조인 스웨덴 금속노조의 경우 금속사용자연맹(VI)와 교섭을 통해 협약을 이끌어내고 금속노조원 가운데 90% 정도가 이를 따르게 된다. 나머지 10%는 사용자가 VI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지만 이 같은 결정을 받아들이며, 관행적으로 동종산업의 비조합원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특별취재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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