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 이젠 생활이다] 시장에 맞는 제도와 인력 양성하라 상품 난립·후진적 운용… "모래성 될라"폭발적 성장 불구 고객보호등 '기본기' 약해'복제펀드'가 대부분…글로벌 경쟁력도 미흡위기감 갖고 규제완화·전문인력 양성 나서야 ‘6개월새 펀드자금 30조원 증가, 펀드 계좌 1,600만개, 종합자산관리계좌(CMA) 325만개, 펀드 잔고 21조원(7월 말 기준) 돌파, 코스피200 옵션시장 거래량 세계 1위….’ 한국 간접투자시장이 최근 내놓은 성적표다. 몇 년 전만 해도 간신히 걸음마를 떼는 수준이었던 간접투자시장의 성장세가 가히 폭발적이다. 지난 2005년부터 불어 닥친 펀드투자문화는 이제 전세계 자산운용사들이 한국을 가장 선호하는 시장으로 주목하게 하는 상황이 됐고 일반인들은 접근하기 어렵다는 선물ㆍ옵션 등 파생상품에 대한 한국인의 높은 관심은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하지만 한국 투자시장의 질적인 기반은 취약하다. 투자풍토와 문화, 제도와 고급 인력 양성실태 등이 이 같은 양적 성장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서둘러 제도적ㆍ문화적 기반을 튼튼히 쌓지 않으면 그간 쌓아온 성장세가 모래성처럼 무너질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시장풍토는 아직 후진국=3월 초 투자자들로부터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인프라펀드에 가입한 박남정(35)씨. 그는 6월 들어 이 펀드의 기준가가 잘못 계산돼 자신이 얻어야 할 수익이 고스란히 엉뚱한 투자자에게 이전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 황당한 사실은 이 같은 오류가 2월부터 5월까지 무려 3개월이나 지속됐음에도 불구, 펀드운용사는 아무런 확인도 하지 않고 “사실이 아니다”며 발뺌하기 급급했다는 점이다. 1개월 가까이 지나서야 운용사ㆍ판매사 등이 잘못을 시인하고 수익보상을 약속했지만 박씨는 “이런 회사를 어떻게 믿고 투자하나”라는 회의가 들 수밖에 없었다. 6월 불거진 맥쿼리IMM운용의 펀드기준가 오류문제는 국내 간접투자시장과 자산운용업계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례로 꼽힌다. 운용회사 수는 50여개에 달하지만 이들간 차별성 부족과 열악한 인력에도 불구, 그저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고 파는 데만 급급했지 상품운영과 고객보호는 기초적인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상길 제로인 상무는 “국내 간접투자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갑작스러운 성장으로 인해 금융회사들이 차근차근 밟으며 익혀야 할 ‘기본기’들이 약하다는 점”이라며 “회사간 차별화와 전문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이 같은 문제는 수시로 불거져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펀드 등 간접투자상품이 너무 난립해 있다는 점도 문제다. 투자붐으로 펀드매니저 1인당 맡는 펀드 수가 3.05개로 최근 6년 사이 2배 가까이 늘었다. 과거 출시됐던 해묵은 펀드들이 제대로 운용도 되지 않은 채 이름만 남은 상태에서 제대로 된 정리작업 없이 새상품만 쏟아져 나온 탓이다. 이주안 하나UBS자산운용 마케팅본부장은 “국내 펀드역사에서 사실상 사장(死藏)된 펀드에 대한 정리가 부족했다”며 “이 같은 문제점이 끊임없이 운용사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밝혔다. 운용사의 글로벌 경쟁력이 미흡하다는 점도 질적인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현재 주식형 펀드 75조원 가운데 해외펀드는 50%에 달할 정도로 덩치가 커졌지만 국내 자산운용사 가운데 해외에 지점 등을 두고 직접 상품을 설계, 운용하는 곳은 고작 4~5곳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외국 자산운용사의 상품을 그대로 들여와 판매하는 일명 ‘복제펀드(미러펀드)’가 해외펀드 시장의 대부분(90%)을 차지하고 있다. 만약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운용보수의 절반이상이 외국 운용사 손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권순학 미래에셋자산운용 이사는 “국내 운용사들의 해외 진출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이라며 “앞으로 개별 기업의 노력과 함께 정부차원의 정책적 지원 등으로 해외자산운용 능력을 극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위기감 갖고 제도 개정ㆍ인력 양성해야=제도적인 측면도 별다를 바 없다. 인고(忍苦)를 거쳐 마련된 자본시장통합법으로 금융투자시장 제도확충의 기본 틀은 마련됐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제도가 시장의 선순환을 가로막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표적인 예가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을 통해 수년전 허용됐던 사모펀드(PEF)다. 사모펀드의 상당수는 자금을 모아도 투자할 곳이 없는 ‘개점휴업’ 상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외 부실자산이나 위험부동산 등에 대한 투자, 금감원 등록과정 등에서 여전히 ‘관치’의 잔재를 느껴야 한다”며 “오는 2010년 이후 허용되는 헤지펀드 수준의 규제 완화가 당장 필요하지만 발이 묶여 있다”고 말했다. 당국이 나서 활성화를 추진하는 상장지수펀드(ETF)도 시장에서 퇴출 위기에 몰려 있다. 상반기 수익률 상위권에 오른 ‘코덱스스타ETF’ 등의 경우 95%에 달하는 증권유관기관이 최근 투자자금의 전량을 회수하기로 하면서 자본금 부족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금은 2003년 출범 당시 장기투자 정착을 위해 투입된 자금이었다. 인력 부족 현상은 국내 금융투자시장이 겪는 고질적인 문제지만 여전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정찬형 한국운용 사장은 “펀드매니저를 전문 양성할 인재풀이 사실상 거의 전무하다”며 “운용해야 할 자금규모나 펀드 수는 점점 커지는데 업계 전체가 나서 인재를 기를 생각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산운용협회 집계에 따르면 주요 운용사에 소속된 주식형 펀드매니저는 2001년 말 211명에서 7월 말 375명으로 77.7% 증가하는 데 그쳤다. 현재 펀드매니저 한 사람이 운용하는 자금은 평균 2,045억원. 이는 5년 전(328억원)에 비하면 무려 6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들이 단기간에 몇몇 회사나 당국이 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업계 공동의 대응과 자구책이 필요한 사안들이라고 지적한다. 윤태순 자산운용협회장은 “업계가 처한 현실을 냉정히 따지고 개선하지 않으면 국내 간접투자시장은 밀려 드는 해외 선진투자운용사들에 잠식당할 수 있다”며 “업계가 위기감을 갖고 공동대처하지 않으면 투자자들도 결국 시장을 외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신용융자 가수요 조절위해 대주거래 활성화 해야 美·日등 선진국선 보편화…펀드 稅혜택 강화도 시급 “주식의 가수급이 창출돼 주식 시장이 한층 안정될 것이다.” “주식시장의 안정성과 고객 보호를 위해 규제가 불가피하다.” 불과 한달 반 만에 바뀐 신용융자에 대한 감독당국의 입장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투자자들이 헷갈릴 수밖에 없다. 실제 신용융자 서비스 초기에는 모든 증권사가 고객들에게 돈을 빌려주기에 바빴고 증권사에 돈을 빌려주는 한국증권금융에도 돈이 모자랄 정도였다. 하지만 시중에 수조원 규모의 돈을 뿌려놓고 갑자기 규모를 줄이고 증거금률을 높이자 곳곳에서 부작용이 속출했다. 특히 코스닥시장에서 신용잔고 비중이 높은 종목들은 며칠 동안 가격제한폭까지 떨어지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신용거래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보편화된 거래 방법이다. 두 나라 모두 증권계좌는 현금계좌와 신용계좌로 구분해 운용하고 있으며 결제 불이행 때 진행되는 절차도 우리와 유사하다. 문제는 우리의 경우 신용융자로 발생할 가수요를 조절할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신용거래는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융자와 함께 주식을 빌려 거래하는 대주가 활성화돼야 한다. 그래야만 신용융자로 인한 문제점들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황성윤 증권선물거래소 주식시장총괄팀 부장은 “신용거래는 융자와 대주가 적절히 이뤄져야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우리는 일방적으로 매수만 하고 있어 시장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면서 “서둘러 대주를 활성화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신용융자에 대해선 우리와 차이가 없지만 대주 거래가 활성화돼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대주는 우선 주식을 판 뒤 나중에 다시 사들이는 구조로 신용융자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지금은 신용융자(주식을 사려는 사람)만 있고 대주(팔 사람)는 없기 때문에 주가 급등락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엔 전체 신용거래에서 대주 물량의 비중이 30% 수준에 달하고 있다. 건전한 시장발전을 위해 대주거래 활성화와 함께 시급히 해결해야 할 분야가 펀드에 대한 세제혜택을 강화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펀드 등 간접투자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세제혜택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펀드 선진국인 미국의 경우 퇴직연금에 다양한 세제 혜택을 줘 퇴직연금 시장을 키웠고 이 자금들은 결국 증시로 유입돼 주가 상승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01년 ‘경제성장과 과세조정법(EGTRRA)’을 제정했고 지난해엔 연금보호법(PPA)을 개정했다. EGTRRA는 과세이연(세금납부를 연기해주는 제도)을 받을 수 있는 퇴직연금 부담금 상한을 올리고 저소득층에게는 퇴직연금 부담금에 대한 과세를 면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PPA는 근로자를 DC형 퇴직연금에 자동 가입시키는 내용을 추가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퇴직금 제도를 퇴직연금으로 유도하기 위한 유인책이 없고 퇴직연금에 대한 소득공제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최봉환 자산운용협회 전무이사는 “퇴직연금을 증시로 끌어들여 안전판 역할을 하게 하려면 세제 혜택과 같은 이점을 부여해야 한다”며 “특히 학자금 전용 펀드나 어린이 펀드 등에도 세제혜택을 줘 실생활에 꼭 필요한 자금을 펀드를 통해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고진갑차장(팀장)·문병도·한영일·서동철·전재호·박해욱기자 jeon@sed.co.kr 입력시간 : 2007/08/26 1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