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낮의 영도조선소는 근무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시끄러운 망치소리와 쇠를 깎는 작업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도크의 크레인은 멈춰 있었고 바쁘게 움직이는 현장 근로자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출입문을 쉴새없이 드나들었던 부품 운반 차량의 출입은 거의 볼 수 없고 한진중공업 노조의 파업 현수막만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기자가 현장을 방문했을 때의 분위기였다.
부산 경제를 이끌던 한진중공업의 영도조선소가 수주 가뭄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협력업체의 일감은 갈수록 줄어들어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인데다 인근 상가도 장사가 안돼 폐업을 고려하고 있는 등 지역경제도 휘청이고 있다.
22일 한진중공업과 한진중공업 노조에 따르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지난 2008년 해양경찰청으로부터 소형 경비정 9척(2,200억원)을 수주한 후 현재까지 수주 실적은 단 1건도 없다.
26만㎡ 규모의 영도조선소에 현재 있는 선박은 단 8척뿐. 3척은 도크에서 건조 중이고 나머지 5척은 마무리 작업 중이다. 그나마 도크에 있는 3척도 2011년 3월말이면 모두 건조돼 영도조선소를 떠나게 된다. 73년간 부산의 경제를 견인한 한진중공업이지만 영도조선소는 당장 내년 4월부터 일거리가 없어지게 된다.
올해 6월까지 23척의 수주 실적을 올린 한진중공업의 필리핀 수빅조선소와는 대조적이다. 노조는 한진중공업이 수빅조선소에만 선박 수주를 몰아준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영도조선소의 근로자 A씨는 "선박 수주마저 필리핀의 수빅조선소에만 몰아주는 것을 보니 이는 한진중공업이 영도조선소를 폐쇄시키려는 의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진중공업은 영도조선소를 고부가가치선 건조 전용 조선소로 재구성한다는 방침인 가운데 지난해부터 영도조선소의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으로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현재 영도조선소의 정규직 근로자 총원은 1,900여명. 실제로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일거리가 별로 없어 개점 휴업 중이었다. 지난해 말부터 계속된 감원으로 현재 영도조선소 정규직 근로자 600여명이 퇴사했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영도조선소에는 정규직과 협력업체 직원 등 모두 4,500여명의 근로자가 일을 했었다. 근로자 B씨는 "당시에는 근로자들이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1,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구내식당 출입 차례를 지켜야 했을 정도"라며 "현재는 점심시간에 식당의 빈자리가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
기자재 납품업체만 1,000여개에 달하는 협력업체의 불안감도 높아만 가고 있다. 영도조선소의 일감이 없어지면 모든 협력업체가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 이들은 이미 영도조선소의 일감이 급감하는 바람에 회사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협력업체 관계자는 "영도조선소 납품 물량도 줄었고 원가 인하 압력은 높아져 회사 운영이 너무 힘들다"며 "영도조선소가 잘못되면 일감도 사라져 대부분의 업체들은 문을 닫아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인근 지역 상가도 울상이다. 영도조선소 근처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해자(61ㆍ여)씨는 "예전에는 영도조선소 직원들이 보너스를 받는 달이면 영도의 경기가 다 살아났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됐지만 요즘은 장사가 안돼 죽을 지경"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진중공업은 영도조선소 폐쇄는 결코 없다고 밝혔다. 영도조선소 수주 물량이 없는 것에 대해서도 "조선경기 침체로 인해 현재 기존 가격의 절반 수준으로 선박을 수주할 수 밖에 없다"며 "이 가격으로는 영도조선소에서 수지를 맞추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한진중공업의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조와의 마찰 등 영도조선소를 둘러싼 노사간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져 가고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