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CEO 삶 그리고] 김동환 길라씨엔아이 사장 떡장사 등 산전수전 끝, 야광펜 개발 '성공신화'고교중퇴·가난·신체장애 3중고 스스로 극복반디펜 '대박'… 연 매출 200억 기업 일궈 정민정 기자 jminj@sed.co.kr 김동환 사장 도로표지병 반디야광펜 관련기사 길라씨엔아이는 소아마비와 가난탓에 고등학교 2학년 중퇴, 떡ㆍ계란 장사ㆍ택시기사 등 돈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해야만 했던 사람. 그러나 이제는 연간 매출이 200억원을 넘는 견실한 중소기업 CEO로 거듭난 이. 김동환(48) 길라씨엔아이㈜ 대표이사가 바로 그 주인공. 전북 익산 부농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1학년때 갑작스럽게 소아마비에 걸렸다. 하지만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은 실의에 빠져있던 그를 지금 거의 정상인으로 서게 했다. 단지 왼손만 조금 불편할 뿐이다. 하지만 그의 고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중학교 때 집안 돈을 관리하던 친척이 도박으로 돈을 날려 길거리로 내몰리고 말았다. 서울 삼선교와 아현 시장에서는 야채배달과 계란장사를, 어머니와 함께 꼭두 새벽 나섰던 인천 연안부두에서는 떡을 팔기도 했다. 영업용 택시운전을 하다가 83년 덤프트럭 기사가 된 김 사장은 2년간 사우디아라비아 건설현장에서 보내기도 했다. 85년 봄 귀국한 그는 중동에서 번 돈을 밑천 삼아 액세서리 수출에 나섰지만 거래처를 못찾아 6개월만에 빈털터리가 됐다. 방황하던 그는 87년 친구 제의로 시작한 가스총 영업으로 돈을 모아 한달 만에 법인(익산실업)을 설립할 수 있었다. 매달 1억원의 이익을 냈다. 스스로를 ‘발명가’라고 부르는 김 사장이 스타 기업인에 오르게 된 것은 92년 조명기능을 넣어 밤에도 글을 쓸 수 있는 ‘반디야광펜’을 개발하면서부터. “우연히 밤에 경찰이 교통위반 스티커를 발부하면서 손전등을 어깨 사이에 끼고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어두운 곳에서도 쓸 수 있는 펜을 개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김 사장은 개발동기를 소개했다. 하지만 상품화가 만만치 않았다. 아이디어 수준에 머물던 일명 반디펜은 93년말 김흥수 아남그룹 회장과의 인연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김 회장에게 반디펜 얘기를 꺼내자 함께 만들어보자는 제의를 한 것. 1년여간의 개발과정을 거쳐 반디야광펜이 탄생했다. 제품은 나오기가 무섭게 팔려 나갔다. 그 해 경찰청에 15만개를 납품했고, 이스라엘 군에도 1만개를 수출했다. 미국 시장에서도 인기몰이를 했다. 이후 김 사장은 반디야광스틱, 도로표지병 등 히트상품을 잇따라 내놓으며 성장 궤도를 달리고 있다. 밑바닥 인생을 아는 김 사장은 직원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키워주려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명함 직책은 ‘대표이사’가 아닌 ‘책임사원 발명가’. 그는 “인생에 있어 골든 에이지(Golden age), 골든 타임(Golden time)은 바로 직장생활을 할 때”라면서 “사장은 직원들의 성취욕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회사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일환으로 그는 제품 개발이나 상품화에 공로가 있는 직원에게 매출액의 0.8%를 주고 있다. 신체장애, 가난, 고교중퇴라는 3중고를 딛고 당당히 일어선 김사장. 그는 “바퀴의 크기와 넘을 수 있는 장애물의 크기는 비례한다”며 “장애가 클수록 큰 바퀴를 달아야 하듯 주어진 환경이 힘겨워도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바퀴론’을 던지고 있다. 입력시간 : 2005/11/06 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