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경제블록 출범이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브루나이에서 열리는 제7차 아세안+3국(한ㆍ중ㆍ일) 정상회담은 동아시아 경제블록 창설을 위한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이번 정상회담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자신이 제안해 지난 98년 설립된 동아시아비전그룹(EAVG)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EAFTA), 동아시아 통화기금(EAMF), 동아시아 투자지역(EAIA) 설치 논의를 본격 제기할 예정이다.
아세안+3국은 앞으로 일년간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논의를 진행, 2002년 캄보디아에서 열리는 제8차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플랜을 마련한다는 일정을 갖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동아시아 경제블록 형성의 관건인 한ㆍ중ㆍ일 3자간 자유무역협정에 관한 논의도 활발해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 99년 아세안+3국 정상회담에서 당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와 중국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합의해 시작된 3국 교역활성화에 관한 연구를 종합한 세미나가 지난달 한국에서 개최됐다.
5일 별도의 조찬모임을 갖는 한ㆍ중ㆍ일 3개국 정상은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좀 더 구체적인 논의를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세안+3국 정상회담 시금석 될 듯
90년대 이후 꾸준히 진행된 동아시아 경제블록 논의가 세계 동시 불황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미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높은 이 지역 국가들은 역내(域內) 무역활성화를 통해 미 경제 침체에 따른 타격을 극복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필리핀의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세계경제포럼(WEF)이 주최한 동아시아 경제정상모임에서 "동아시아 경기 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역내 무역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싱가포르의 고촉통 (吳作棟) 총리를 비롯한 대다수 국가의 정상들 역시 역내 무역활성화 필요성을 적극 제안하고 나섰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경제블록화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점도 세계 경제 3대축 의 하나인 동아시아 지역의 발걸음을 서두르게 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일정대로 2002년 1월을 기점으로 유로화를 공식 화폐로 사용하며,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대한 무역촉진권 (TPA) 부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전미자유무역지대(FTAA) 구축 논의도 한층 탄력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 같은 외부 환경으로 인해 동아시아 경제블록에 대한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고, 특히 미 테러 대참사 이후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경제 위기로 인해 이번 아세안+3국 정상회담이 동아시아 경제블록 창설을 위한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자유무역지대 및 통화기금 우선 논의
이번 아세안+3국 정상회담에서는 자유무역지대(FTA) 설립에 관한 논의가 우선적으로 이뤄질 공산이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지역 국가들은 오래 전부터 역내 교역 활성화를 통해 대미 수출 의존도를 줄인다는 방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정보통신(IT) 상품을 중심으로 한 대미 의존도가 높아 미국의 경기 동향에 따라 자국의 경기가 연동되는 지극히 취약한 경제구조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97년 한 국가의 금융위기가 급속히 이웃 국가로 전염돼 지역 전체가 금융위기를 맞게 됐던 이 지역 국가들은 동아시아 금융위기에 공동 대처할 수 있는 통화기금(EAMF) 설립에도 적극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동아시아 비전그룹(EAVG)의 보고서도 자유무역지대 구축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통화기금 설립 ▦환율안정을 위한 공조체제 구축 등 금융시장 안정 조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각국 이해 엇갈려 산고도 예상돼
동아시아 경제블록 필요성에 각국이 공감하고 있지만 논의 과정에서 이견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각국의 이해 관계가 상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가 구축된 뒤 자국 업체들이 대거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산업 공동화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또한 동남 아시아 국가들은 외국인 투자가 중국에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을 염려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저가의 공산품 뿐만 아니라 첨단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대해서도 점차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중국이 결국 세계시장을 놓고 경쟁해야 할 상대란 점도 구체적인 협상을 어렵게 할 수 있는 요인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장순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