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예산낭비의 구조분석

내가 출근하는 길에 제법 큰 로터리가 있었다. 차량 통행이 많은 곳이기는 하지만 답답한 도심에서 보기 드물게 트인 공간이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공사를 시작하더니 좁은 차선만 남겨놓고 공간을 모두 메워 보도로 만들어버렸다. 당연히 교차로에서 차들이 뒤엉켜 오도가도 못하는 사태가 종종 벌어진다. 전에는 거의 없던 현상이다. 우스운 것은 이 공사 이유가 ‘상습 교통체증 개선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차량은 많고 도로가 좁아 발생하는 것이 교통체증인데 도로를 대폭 줄이면서 교통체증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니 어이없는 노릇이다. 보행자들도 한층 불편해졌다. 전에는 도로를 한번만 건너면 됐지만 이제 두번이나 건너야 된다. 차도 보행자도 모두 불편해진 것이다. 공연히 말뚝을 촘촘히 박아놓고 대형 화분 같은 걸 늘어놓은 걸 보면 무슨 용도가 있어 도로를 메워 보도를 만든 것 같지도 않다. 차량 통행이나 보행자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되레 불편을 주는 공사라면 아까운 예산을 낭비해가며 개악을 한 셈이다. 세금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마구잡이 보도블록 공사 제동 그동안 대표적인 예산낭비로 지적돼온 마구잡이 보도블록 공사를 하기가 어려워진다고 한다. ‘도로 및 보도 굴착 표준규칙’을 만들어 모든 자지체에 권고함으로써 시도 때도 없이 멀쩡한 보도불록을 교체하고 도로를 파헤치는 공사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수십년 동안 계속돼온 관행을 고치는 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대표적인 예산낭비에 제동을 걸기 위한 제도를 마련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도로를 메운 공사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예산낭비성 공사나 시설물들은 주변에 널려 있다. 특히 도로와 교통 관련이 많다. 대형 화분을 늘어놓는가 하면 공연히 울타리를 치고 조잡스러운 조형물들을 설치해 가뜩이나 비좁고 답답한 도시공간을 채우는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유치한 구호를 내걸거나 효과가 의심스러운 캠페인 등에 낭비하는 예산도 적지않아 보인다. 명분으로는 아마도 안전이니 환경과 공익을 내세울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공사나 시설물들은 해당 관공서나 공무원의 업적목록에 오를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식에 걸맞지 않은 이런 자가발전적인 일들이 과연 국민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인지를 따져볼 때가 됐다. 기왕 보도블록 공사처럼 국민생활에 도움이 안되는 일에 아까운 세금을 허비하는 일을 막기로 했다면 그 대상을 좀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중앙부처로 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각기 자기 부처 업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런저런 명분을 앞세워 사업을 벌이거나 조직 키우기, 산하기관 늘리기 경쟁을 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러다 보니 비슷비슷한 일에 대한 중복이 많을 수밖에 없다. 세금을 아끼기 위한 예산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일의 경중이나 과다와는 상관없이 공무원 수는 계속 늘어난다’는 파킨슨의 법칙이 작동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후진국일수록, 가부장적인 정부일수록 국민의 편의나 국가발전과는 별 상관이 없는 자가발전적인 업무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담당 공무원 월급 깎는 일본 예산의 효율적 사용에 관한 한 국회도 별로 믿을만한 데가 아닌 듯하다. 정부 부처 예산안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칼질을 해대면서 자신의 지역구 민원사업에 대해서는 없던 예산까지 만들어 끼워넣기에 정신이 없다고 한다. 당초에는 수십조원을 깎겠다고 큰소리였지만 국회심의를 거치면서 예산안이 몇 조원씩 되레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정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국가부채도 급증하고 있다. 복지ㆍ국방ㆍ교육ㆍ연구개발과 같은 국가적인 과제를 차질 없이 해나가자면 예산의 효율적 사용을 위한 제도혁신이 시급하다. 예산 칸막이를 없애고 부문별 통합관리가 요구된다. 불필요한 시설이나 공사를 해 예산을 낭비하면 해당 공무원의 월급을 깎는다는 일본의 예산낭비대책이라도 배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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