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5월 12일] 시장을 정의(定義)하는 것은 고객

변동식(CJ헬로비전 대표)

하나의 산업이 태동하고 발전하는 데 있어 그 중추에는 테크놀로지(Technology)가 있었다. 새로 발명된 기술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므로 ‘기술은 곧 시장’이라는 명제를 낳았다. 하지만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기술ㆍ공급자 주도로 형성되던 시장은 고객의 상품ㆍ서비스 이용 행태로 인해 빠르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과거 공급에 따라 수요가 움직이던 행태에서 벗어나 상품에 대한 구매를 결정하는 고객의 취향에 따라 공급자들이 움직이는 고객 중심형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방송과 통신 분야도 마찬가지다. 과거 방송과 통신시장은 정보전달 수단과 전달 매체의 기술적 속성 등에 의해 서로 다른 서비스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시장이 성숙되고 상호 융합이 진행되면서 양측 간 장벽이 무의미해진 것은 물론 예전과 다른 새로운 시장이 탄생하며 고객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요구하고 있다. 새롭게 태어난 융합시장 역시 기존 시장과의 물리적ㆍ화합적 결합으로 탄생한 것인 만큼 기존 시장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공급자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기존과 다르다는 점을 부각함으로써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고객 입장에서는 몇몇 차이점만으로는 예전과 다른 서비스로 치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신규로 등장한 시장과 기존 시장과의 경쟁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같은 시장이라는 고객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이를 굳이 다른 시장으로 정의한다면 어떻게 될까. 현실과 제도의 괴리 속에 공급자들이 결국 제 살 깎아먹기 식으로 기존 시장을 나누는 데만 몰두함으로써 정작 고객은 뒷편으로 밀려나버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반면 합리적인 규제의 틀 내에서 선의의 경쟁 시스템을 만든다면 어떨까. 공급자 간 갈등을 건전한 경쟁의 에너지로 전환함으로써 시장 규모를 키우는 것은 물론 이를 통한 고객 편익 향상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서비스가 고도화되고 시장이 성숙돼가면서 새로운 시장이 등장해 연관산업과 융합하거나 갈등을 빚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럴 때마다 시장을 인위적으로 구분하기보다는 고객 입장에서 시장을 정의하고 기존 시장과 새로운 시장이 합리적인 경쟁 틀 안에서 선순환의 발전 고리를 형성할 수 있도록 정책당국과 산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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