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부통령이라는 직책이 주는 부담에서벗어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플로리다주에서 재개표끝에 패배, 풀지 못한 한(恨) 때문일까? 최근 앨 고어 전 부통령이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원 유세에 적극 나서면서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매우 강한 톤의 '반(反) 부시-체니' 언사를 쏟아내고 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최근 딕 체니 부통령이 케리 후보를 겨냥, 이번 대선에서 후보를 잘못 뽑으면 미국이 테러를 당할 것이라고 발언한데 대해 "천박하고 경멸스럽다"고 비판한 것은 물론, 참전용사들의 '반 케리' 광고 등과 관련해 조지 부시 대통령 진영을 "도덕적으로 겁쟁이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천박한 정치술수" "디지털나치당원들"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그는 대학 세곳에서 강의를 하는 빠듯한 스케줄 속에서도 케리 후보 지원 유세뿐만 아니라 의회 선거에 나설 민주당 후보들을 위한 모금 파티까지 집에서 여는 등마치 자신이 선거를 치르듯 바쁘게 보내고 있다.
지난 주만 해도 9일 펜실베이니아주 2개 도시에서 케리 후보 지원 유세를 가졌으며 10일에는 일리노이주에서 민주당 하원 후보 멜리사 빈을 위한 모금운동을 벌였다.
일부 언론들은 고어가 지난 2000년 대선에서 지금처럼 점잖떨지 않고 치열하게했더라고 승리했을 것이라고 까지 말할 정도다.
고어가 이처럼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맘껏 활동하는데는 케리 후보를 도우려는 의지도 있겠지만, 부시 대통령을 낙선시켜 맺힌 한을 풀려는 것으로 보는 관측이 적지않다.
예를 들어 지난 7월말 민주당 전당대회 연사로 나섰을 당시도 당초 케리 후보측이 작성한 연설문 내용에서 주요 아이디어만 뽑아낸 후 나머지는 밤새 자신이 새로쓰는 바람에 케리 후보 진영을 바짝 긴장시켰었다.
그는 "이번 대선은 모든 표가 계산되도록 해야 한다" "이라크와 알카에다를 혼동할 것을 주장하지 않는 대통령이 나오면 우리가 더 안전해지지 않겠느냐" "온정적보수주의는 어디갔느냐" 는 등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퍼부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미국은 국내를 강하게 하고 외국에서 존경받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케리 후보의 구호를 제창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같은 고어의 활동에 대해 공화당측은 "마치 독이 오른 응원단장 같다"면서 그의 열정이 지나친 나머지 결국은 민주당에 해가 될 것이라며 평가절하했다.
반면, 민주당측은 고어가 부통령을 지낸 덕에 부시 행정부를 비판할 충분한 경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를 큰 자산이라고 반기면서도 혹시나 역풍을 우려, 일정한 선을 넘지 말아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박노황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