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7월3일] 월가의 마녀

‘포브스지가 선정한 밀레니엄 부호 중 유일한 여성, 역사상 가장 지독한 구두쇠.’ 투자가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시절, 누구보다도 고수익을 올렸던 헤티 그린(Hetty Green)의 면면이다. 비법은 ‘저가 매입, 고가 매도’. 해티는 어릴 때부터 유별났다. 6살 난 아이가 경제신문을 읽고 8살엔 용돈을 관리하는 개인계좌를 텄다. 13살부터는 가업인 포경회사의 경리업무도 도맡았다.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한 것은 유산 600만달러를 받았던 1864년. 남북전쟁 와중에서 액면가의 40%로 떨어진 국채를 주로 사들였다. 재산은 곧 1,000만달러로 불어났다. 큰 돈을 벌어도 그녀는 쓰는 법이 없었다. 부유한 선박업자와 결혼, 1남1녀를 뒀지만 헤어진 이유도 ‘남편의 사치벽’ 때문이었다. 별거 후 절약은 도를 더해갔다. 연료가 안드는 오트밀로 식사를 때우고 세금을 피하려 싸구려 아파트에서 지냈다. 헤티가 가장 반긴 뉴스는 ‘공황’. 주가가 바닥이다 싶으면 사들여 오를 때까지 버텼다. 지분싸움을 벌이던 경쟁자의 거래은행에 거액을 예치한 후 한꺼번에 인출해 상태를 파멸시킨 적도 있다. ‘월스트리트의 마녀’라는 별칭도 붙었다. 세탁비를 아끼려 검은 상복만 입었으니 별명이 그럴싸하다. 연봉 500달러인 노동자보다 세금을 덜 낸다는 비난 속에 1916년 7월3일, 81세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남긴 유산은 1억달러. 요즘 가치로 173억달러에 달하는 돈은 아들ㆍ딸이 물려받았다. 어릴 적 다리를 다쳤으나 진료비 150달러를 아까워 했던 모친 때문에 썩은 무릎을 잘라냈던 아들 네드는 원 없이 돈을 써댔다. 지출목록에는 자신의 절반 나이인 24살짜리 애인에게 선물할 다이아몬드가 박힌 5만달러짜리 정조대도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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