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기업인 전성시대 이현우 hulee@sed.co.kr ‘광풍제월(光風霽月)’.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 ‘희망의 사자성어’다. 송사(宋史)에서 유래한 말로 고매한 인품을 의미하지만 글자 그대로의 뜻은 ‘맑은 날 바람처럼, 비 갠 뒤 달처럼’이다. 새해는 혼란과 시비에서 벗어나 그처럼 희망찬 날이 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는 것이다. 무자년이 그런 한 해가 될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기업인들에게는 딱 어울리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신분이 당선인으로 바뀐 때부터 재계에는 봄바람 가득한 신나는 날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내내 주눅들고 불만 가득했던 재계의 표정은 일순간에 기쁨과 기대로 바뀌었다. ‘환상적 분위기’ ‘십 년 묵은 체증이 확 뚫리는 기분’이 기업인들의 요즘 소감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대기업총수ㆍ중소기업인ㆍ금융인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발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행보를 보면 그럴 만도 하다.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ㆍ기업친화적) 정부를 만들겠다’ ‘투자에 애로사항이 있으면 직접 전화해도 좋다’ ‘기업인이 존경받는 분위기를 만들겠다’ ‘고용을 많이 하고 세금을 많이 내는 상공인들이야말로 진짜 애국자다’ ‘공항 귀빈실은 정치인보다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인들이 써야 한다’. 이 당선인은 기업인들이 그동안 학수고대했던 그러나 좀체 들을 수 없던 말을 잇따라 내놓았다. 이런저런 사건으로 눈총을 받고 있는 일부 그룹 총수들이 이 당선인에게 누가 된다며 간담회 참석을 주저하자 개의치 말고 나오라고 배려하기도 했다. 이 당선인의 기업인 떠받들기는 말로 그치지않고 구체적 조치로 이어지고 있다. 그것도 아주 신속하게. 공항귀빈실 발언이 있은 지 채 며칠도 안돼 인수위가 경제단체에 해당 기업인을 선정해줄 것을 요청한 게 그런 사례다. 재계가 애타게 바랐던 출자총액제한ㆍ금산분리ㆍ수도권공장총량제 등 핵심규제의 완화 내지 폐지 방침도 가시화되고 있다. 더욱 기쁜 것은 기업들에게 껄끄럽기 짝이 없는 존재인 공정거래위원회ㆍ검찰ㆍ국세청 등까지 나긋나긋한 자세를 다짐(?)한 것이다. 인수위는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너무 고압적이다’고 일침을 놓았고 법무부와 검찰에는 ‘지나치게 포괄적인 수사로 기업활동에 장애를 주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주문했다. 국세청은 ‘기업을 섬기는’ 세무행정을 약속했다. 기업이 하고싶고 듣고싶은 말을 인수위가 대신해준 것이다. 업무성격상 기업을 친하게 대할 수 없는 기관들까지 ‘친기업’을 외치고 있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고 안 자도 피곤함을 모를 정도다. 바야흐로 기업인 전성시대가 활짝 열린 느낌이다. 기업인들의 사기와 경영의욕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경제의 첨병인 기업이 잘해야 국가경제가 잘 돌아가고 국민들의 살림살이도 펴지기 때문이다. 기업인 전성시대가 앞으로 더욱 활발히 전개돼야 하는 이유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계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재계가 당선인의 친기업적 행보에 투자와 고용확대로 박자를 맞춘 것은 반길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영투명성 제고 등 정도경영이 필요하다.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과 로비, 경영권 변칙승계, 부당내부거래, 담합 등 과거의 음습한 경영행태가 계속되면 기업친화적 정책은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런 기업인들을 우대하는 것은 정경유착 시비를 불러 정부의 운신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벌써부터 기업인 우대가 너무 지나치다며 윤리경영도 강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판이다. 다른데도 아닌 집권세력 내부에서 말이다. 이 당선인은 기업인들에게 애로사항 해결을 약속하는 한편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와 법질서 확립 노력을 당부했다. 톤은 부드럽지만 그 의미는 가볍지 않다. 재계는 이를 잘 새겨야 한다. 기업인 전성시대의 지속여부는 기업인들이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입력시간 : 2008/01/16 1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