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울 삼성동 공항터미널 맞은 편 모 빌딩 5층. 몇 달마다 사무실을 옮겨 다니며 투자사기를 치는 속칭 `기획부동산`인 S사의 텔레마케터들이 “사장님 행정수도 이전 아시죠, 그 수혜지인 서산 땅 관심 없으세요”라며 투자자들을 현혹하고 있었다. 언뜻 봐도 족히 50~60명은 돼 보일 정도로 숫자도 많고 어수선했다. 특히 대졸 취업난을 반영하듯 30~40대 아줌마 외에도 20대 아가씨들이 꽤 눈에 띈다.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이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회사를 찾는 예비 투자자들에겐 집중적인 `세뇌교육(?)`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노련한 꾼들로부터 두어시간 교육받다 보면 웬만한 투자자들은 `정말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라는 환상을 갖게 된다.
실제 기자가 취재차 상담을 받았을 때도 이들은 `전반적인 부동산 시장흐름, 토지투자 붐, 행정수도 이전 등에 따른 충청권 토지 유망, 서산에 자동차와 석유화학단지 조성 등 개발계획` 등을 자세히 설명하며 “서산 땅에 투자하면 1~2년내에 2~3배는 벌 수 있다”며 귀가 솔깃하게 했다. 이들은 또 투자성공사례를 늘어 놓거나 언론을 교묘하게 짜깁기해 활용하는 노회함도 보였다. 이어 현지 도면을 펼쳐놓고 입지가 좋은 곳을 가리키며 “매물이 귀해 투자자가 많다”며 신청접수금 100만원을 우선 입금할 것을 집요하게 권유했다.
하지만 신청접수금을 내는 순간 이 돈은 돌려받기가 힘들고, 투자로 이어질 경우에는 헐값에 불과한 땅을 바가지 쓰기가 십상이어서 더 큰 문제라고 피해자들은 입을 모았다. 현장을 방문해 지방자치단체에서 토지용도 등을 확인한 뒤 땅을 사더라도 권리관계가 복잡하거나 공동등기가 이뤄져 되팔기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토지를 매입하며 흔히 작성하는 이중계약서 때문에 수사 과정에서 투기꾼으로 몰릴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생활정보지나 인터넷에 매매ㆍ임대 광고를 내서 좋은 조건으로 팔아주겠다”며 광고비를 편취한 사례도 지난해에만 300여건이나 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되는 등 기획부동산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소보원 최윤선 차장은 “지난해 토지 분양 사기에 걸려 계약금이나 투자금을 날린 상담건수만 30건으로 전년대비 3배나 늘었다”며 “토지투자 붐에 편승해 `묻지마식 투자`에 나서는 것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기획부동산이 활개를 치자 건설교통부는 금주부터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 국세청,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중개협회 등과 함께 단속에 착수했다. 대상은
▲무작위로 전화해 부동산투기를 조장하고
▲개발예정지 등에 대한 거짓정보를 흘리며
▲부동산을 비싼 값에 즉시 팔아주겠다며 고액의 광고비나 수수료를 징수하고
▲미등기전매 등 불법중개로 부동산투기를 조장하는 행위 등이다.
류윤호 건교부 토지국장은 “10ㆍ29 대책 이후 한동안 주춤하던 불법 텔레마케팅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며 “253개 시ㆍ군ㆍ구와 함께 피해 사례를 접수받고 업자들의 불법중개 사실이 확인되면 부동산중개업법 위반으로 고발(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고광본기자 kbg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