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결전에 나선 대통령의 제안

지난 9일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보면서 세 가지가 떠올랐다. 내용의 여하간에 논쟁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던 4년의 세월, 큰 구도를 중시하는 노대통령의 스타일, 무모해 보일 정도로 모든 것을 던지기를 정말 마다하지 않았던 승부사적 기질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번 제안은이 모든 것이 응축된 대통령의 승부수의 시작으로 보인다. 전격적인 개헌 제안을 위한 구상과 준비는 최소 지난해 12월 초 외국순방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느닷없이 국민에게 공개한 장문의 편지를 쓸때부터 시작된 듯하다. 9일 대통령의 모습은 나름대로 모든 경우에 대한 검토를 끝내고 자신만만하게 결행을 시작하는 면모가 역력했다. 노 대통령은 담화에서 결코 정략적인 의도가 없다고 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을지는 몰라도 엄청난 정치적 변화의 과정을 겪는 시간이 몇 개월간 전개될 것이다. 개헌논의에 정치 불안감 커져 당장은 대통령의 제안으로 그동안 언론을 장식했던 여당의 신당창당 논의나 야권의 대권주자들을 중심으로 지속됐던 지지율에 대한 관심이 최소 몇개월간 정치의 중심에서 벗어날 것이다. 대신 개헌의 필요성과 시기, 구체적 내용에 대한 논란이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기존의 정치적 경계를 넘나드는 정치적 변화의 단초들이 자리하게 될 것이다. 여당의 신당논의는 범통합신당적 논리가 힘을 얻게 될 것이고 여권은 이번 기회를 야당 후보군이 압도하던 대선판을 바꾸는 계기로 삼으려 할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던진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심해야하는 수동적인 입장이다. “정치판을 흔들려는 묘수 정치”라는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비공개 발언은 이 같은 야당의 고민을 함축하는 것으로 들린다. 과거 야당과 달리 정치적 상상력과 승부수에서 여당에 늘 끌려 다니는 현 야당은 대통령의 파격적이고 전격적 제안이 있을 때마다 그 의중을 파악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거같다. 게다가 탄핵과정에서 호되게 당하면서 생긴 피해의식이 명료한 판단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계속 작용하는 듯하다.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내용은 사실 국민적 합의가 상당한 수준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런데 개헌저지선을 확보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일차적 반응은 부정적이다. 국민의 여론이 변하지 않는다면, 설혹 한나라당이 몇개월의 논란 끝에 개헌논의를 원점으로 돌린다 하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은 아마도 대통령직을 걸고 이번 개헌논의를 주도해 나가면서 여야, 특히 야당을 다양한 방법으로 압박할 것이다. 향후 국민의 여론이 긍정적이라면 이 압박의 강도는 더욱 강해질 것이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양대 후보가 존재하는 한나라당이 개헌반대의 대오를 일사분란하게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를 극복하지 못해서야 집권하게 해달라고 국민에게 요구할 수 있겠는가. 이번 개헌 논쟁을 통해 무려 40%가 넘는 지지를 받는 대권주자를 가졌으면서도 스스로도 왠지 불안해 하는 모습을 극복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경제민생 소홀해선 안돼 문제는 이 같은 정치적 격전의 와중에서 올 1년간 나라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것인지, 국민의 삶이 더 힘들어지지는 않을 것인지 하는 점이다. 대통령 선거만으로도 올 한해 국가경영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았는데 개헌논쟁까지 더해지면서 여야 정치권을 비롯한 국가의 역량이 그야말로 정치에만 골몰하는 한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더욱이 일각에서 예상하는 대로 개헌 무산을 명분으로 대통령이 임기 중에 사임하는 상황까지 발생한다면 국가의 불확실성은 그야말로 증폭 될 것이다. 정치권을 비롯한 모든 국가기관들이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켜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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