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전직 경제수장에게 듣는다] <3·끝> 김 진 표 前경제부총리

아직은 위기 아니지만 슬럼플레이션 올수도<br>경제위기 온다면 中企서 시작될것<br>안정감 주고 예측 가능한 정책 펴야<br>세금 환급은 전형적 포퓰리즘 정책<br>월2만원 준다고 누가 고마워하겠나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가운데 물가상승)을 넘어 슬럼프와 인플레이션을 합친 ‘슬럼플레이션’ 단계로 나아갈 소지가 있습니다.”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현 민주당 최고위원)은 서울경제신문 창간 48주년을 맞아 최근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인터뷰를 갖고 “우리 성장률이 떨어지고 물가는 급등한 상황에서 미국 경기가 급강하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경제위기 가능성에 대해 “아직은 아니지만 잘못하면 위기가 현실화될 수 있다”며 “특히 위기가 온다면 중소기업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심화되면서 대출 연체율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그는 청와대와 정부ㆍ여당의 경제위기론에 대해서는 “박정희 정권 때 써먹던 수법”이라며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위기라고 말하면 안 되고 국민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고 강력 비판했다. 그는 경제팀에 대해 “전반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정책을 펴야 한다”며 “민생 경제를 되살리고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해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 정부의 국정운영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출범 5개월 만에 어려운 대외 여건을 극복하는 데 가장 필요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다. 가령 정부조직 개편을 공청회 한번 없이 후닥닥 발표하다가 결과적으로 본래 개정안대로 되지 않았다. 내각ㆍ청와대 수석 임명 과정에서도 ‘고소영’ ‘강부자’ ‘S라인’ 등 신조어를 낳으며 많은 불신을 야기했다. 쇠고기 파동 때 국민건강권이나 검역주권 지적에 대해 대통령까지 “그것 먹는다고 죽느냐” “안 먹으면 될 것 아니냐”는 식으로 대응했다. 국민들의 달라진 의식ㆍ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것이다. -MB 노믹스와 현 경제팀이 내놓은 경제정책을 평가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747 공약’은 성장우선주의였고 핵심 주체로서 수출 대기업을 염두에 뒀다. 수출 증가가 중소기업 성장, 일자리 창출, 국민 소득 증가로 이어진다는 ‘낙수 효과(trickle down effect)’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이 대통령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970년대식 경제발전의 추억, 밤새워 일하는 식의 모델을 염두에 뒀다. 하지만 현재 경제 어려움의 원인인 고유가, 원자재 가격 급등은 일시적인 게 아니라 구조적 요인 탓이다.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하고 있어 고유가 상황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다. 반면 정부는 ‘7% 성장’이라는 주관적 환상에 빠졌다.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분의 절반 이상이 고환율 정책 때문이다. 일본ㆍ중국ㆍ대만ㆍ유럽연합(EU) 등 다른 나라는 해외 인플레이션 요인을 차단하기 위해 수출 감소를 감내하면서 자국 통화를 절상했다. 우리는 거꾸로 갔다. 더구나 수출도 크게 안 늘면서 낙수 효과도 생기지 않았다. 지금은 1970년대와 경제구조가 다르다. 당시는 만성적 공급부족 사태였고 물가도 캄보디아 수준에 불과했다. 물가가 100% 올라 수출가격에 반영해도 선진국에서는 무시해도 되는 수준이었다. 지금은 우리나라 물가가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 옛날 방법으로는 수출을 늘릴 수 없다. -정부도 경제운용의 기본 방향을 성장에서 안정으로 바꿨는데. ▦5월부터 안정 위주로 방향을 전환했지만 그 방법 역시 1970년대식이었다. 시장에 명령하는 방식으로는 아무 성과도 올리지 못하고 물가만 올린다. 물가가 오르면서 국민 자산이 10조~15조원은 빠져나간 걸로 추산된다. 투자ㆍ일자리 등 늘어난 게 뭐가 있나. 이게 전반적인 이명박 정부의 성적표다. 경제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4월 말 대통령이 물가안정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환율이 떨어졌다. 하지만 강 장관은 “언론이 대통령 발언을 잘못 해석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성장 중심주의를 못 버린 것이다. 경제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국민들의 신뢰가 필수적인데도 정부가 너무 오락가락해 신뢰를 상실한 것이다. -물가가 올 상반기 화두라면 하반기에는 고용일 것 같은데. ▦참여정부 동안 고용이 늘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그래도 매년 30만개씩 일자리가 늘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것보다 많아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6월 신규 일자리는 14만7,000개에 불과하다. 한나라당은 보수 정당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 세계잉여금 10조원을 투입해 납세자의 70~80%에게 1인당 2만원씩 나눠줬다.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다. 월 2만원으로 누가 고마워하겠는가. 화물 자동차 1대 가지고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이 30만~40만명에 이른다. 수혜자를 3분의1로 줄여 진짜 어려운 사람에게 줘야 했다. 재정 조기 집행, 추경편성 등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하강 속도를 완만히 조절하는 한편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서민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사회서비스 육성, 중소기업 정책, 고용 창출 위주의 경제산업 정책이 필요하다. 현 정부처럼 대기업 중심 정책으로는 고용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 일자리 창출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중소기업 경영이 안정돼야 한다. -경제운용방향에 조언을 한다면.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하반기에 유가가 150달러를 기록하면 성장률은 2.5%로 떨어지고 물가는 8.9% 오른다고 예측했다. 여기다 미국 경기가 급강하하면 슬럼플레이션 가능성이 있다. 전반적으로 안정을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민생 경제를 되살리고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해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과거 스태그플레이션 경험을 보면 성장도 하고 물가도 안정된 때는 없었다. 2차 오일 쇼크 후유증으로 전두환 정권 첫해 물가가 40%대로 뛰었는데 1981년에는 10% 이하로 내려갔다. 그때가 물가안정의 시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경제를 모르니까 모든 것을 전문가에게 맡겼다. 반면 이 대통령은 경제를 자기가 가장 잘 안다고 확신하고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대통령을 비롯해 재정부 장관,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등이 위기론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다.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리 경제가 위기라고 한 적이 있느냐. 정부 당국자가 경제위기론을 말하는 의도가 뭐냐. 12시가 위기라고 하면 6시ㆍ7시밖에 안 됐으니까 위기론을 꺼내는 것이다. 10시ㆍ11시 되면 못한다.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위기라고 하면 안 된다. -그렇다면 지금은 위기가 아니라는 뜻인가. ▦아직은 아니지만 잘못하면 위기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첫째는 물가다. 에너지 절약 캠페인과 함께 자전거 타기 운동 등 친환경적이고 파격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 둘째는 자산 디플레이션의 악영향이다. 외국인의 셀코리아 지속으로 주가가 지속 하락하면 소비가 감소할 수 있다. 또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부실화되면 금융위기로 번질 위험이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게 중소기업 문제다. 원자재 가격이 뛰는데도 오히려 대기업 납품단가가 떨어지면서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중소기업 대출이 급격히 느는 동시에 연체율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신용보증기금ㆍ기술신용보증기금의 보증한도 확대 등을 통해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이 쓰러지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위기가 오면 중소기업에서 비롯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심각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안정 정책으로 회귀하면서 인기영합주의가 아니라 일관된 정책을 펴야 한다. -공기업 기관장 인선 등을 보면 반관료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관료를 한꺼번에 안 쓴다는 것은 난센스다. 역사는 단절이 안 된다. 일단 계승하면서 단계적으로 가야 한다. 전문 분야에서 쓸 수 있는 훈련된 사람이 많지 않다. 관료라고 쓰지 않으면 아마추어를 쓸 수밖에 없다. 정치인도 믿지 못할 텐데 그러면 교수 출신을 써야 한다. 하지만 우리 학계는 미국과 달리 현실사회에 무지하다. 20~30% 정도 섞어 아이디어를 수혈하는 수준이면 몰라도 너무 많이 쓰면 문제가 생긴다. 다만 관치경제의 폐해는 분명한 만큼 관료제는 시간을 갖고 고쳐나가야 한다. -한나라당은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기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치적 슬로건이다. 역대 대통령은 공과가 있었다. 이 대통령도 참여정부 국토균형발전의 기본 골격을 따라가지 않았나. 크게 보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기초를 충실히 다지는 과정이었다. 복지예산 증가, 남북평화정책, 새 바람을 일으킨 IT기술, 돈 안 쓰는 정치문화 확립 등은 분명한 성과다. 또 참여정부 때는 4% 중반인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성장을 달성했고 물가도 안정됐다. 이명박 정부의 성적표와 비교해보라. 올해 물가가 4% 이내로 안정되기는 불가능하고 5% 이내면 성공이다. 국민들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사실대로 털어놓고 말해야지 호도하면 안 된다. "李대통령 성장지상주의 버려야 姜장관도 힘 받아"
■ 강만수 장관 경질론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기왕)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재신임했다면 출범 초반에 성장 드라이브를 건 것은 전적으로 내가 책임질 문제이고 이제는 안정으로 가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김진표 전 부총리는 강 장관 경질론에 대해 "경제 장관들이 성장을 중시하는 대통령에 맞추려다 보니까 해외 여건이 어떻게 되든 고환율 정책, 수출 드라이브를 추진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경제팀 경질 요구는 잘못된 정책에 대한 책임과 반성의 뜻을 밝히라는 뜻이지 강 장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이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강 장관은 앞으로도 물가불안, 금융시장 불안 등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경질설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책운영 방향을 성장에서 안정으로 바꿨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확실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강 장관이라는 성장론자를 경질하는 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며 "지금으로서는 확실히 정책기조를 바꾼 것인지 불분명하다"며 말했다. 그는 또 현재의 대내외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경제부총리제 부활 등을 통해 경제팀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부총리는 "전체 경제팀이 하나로 통일되고 일관되게 정책운영을 하는 컨트롤 타워로서 부총리제가 필요하다"며 "법률을 개정하지 않고 대통령 훈령으로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부총리제 폐지는 대통령이 직접 경제정책에 관여하겠다는 뜻이지만 우리 경제는 대통령 한사람의 힘으로 판단하고 몰고 갈 정도로 규모가 작거나 단순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 대통령처럼 독선 있는 사람에게는 장관들이 소신 있게 말을 못한다"며 "(부총리제를 부활해) 경제 장관끼리 말하다 보면 부처ㆍ업계ㆍ국민들의 어려움이 자연스레 나오면서 국민 눈높이에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표 프로필 ▦1947년 경기도 수원 ▦1966년 경복고 ▦1971년 서울대 법대 ▦1988년 미국 위스콘신대 대학원 ▦1993년 재무부 세제총괄심의관 ▦1999년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2001년 재경부 차관 ▦2002년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 국무조정실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 ▦2003년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2005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정책위의장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민주당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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