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로펌들 발로 뛴다
치열한 수임경쟁따라 고객 확보 직접 나서인·학맥도 안통해… 제안서 철저히 준비해야똑똑해진 의뢰인, 법률서비스 따져보고 선정
이혜진기자 hasim@sed.co.kr
#1 : 국내 대형 로펌인 A사의 L변호사는 신문에서 기업들간의 거래 분쟁이 생겼다는 기사를 보고 그 중 한 회사 법무팀으로 연락을 취했다.
과거 비슷한 소송에서 승소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회사 법무팀 관계자를 만나 이를 소개하고 사건을 수임하기 위해서 였다.
그런데 마중을 나온 회사 담당자는 “B로펌에서 오셨습니까”라고 물어 L 변호사를 당황케 했다. 다른 대형 로펌인 B사에서도 기사를 보고 찾아오겠다고 이미 연락을 취했던 것이다.
#2 : 법무법인 세종의 박교선 변호사는 자동차 대기오염 소송을 맡기 위해서 며칠에 걸쳐서 ‘피 말리는’ 프리젠테이션(PT)을 준비해야 했다. 자동차 회사 관계자들이 쭉 앉아서 지켜보는 가운데 또 다른 로펌과 경쟁 PT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형 로펌들까지 고객확보를 위해 직접 발벗고 나서면서 로펌들 사이에 ‘수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는 고객들이 로펌 간판을 보고 사건을 들고 오기를 기다리거나 회사 관계자들과의 안면을 이용해 사건을 맡을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오금석 변호사는 “요즘에는 변호사와의 안면을 고려해서 사건을 맡기는 일은 드물다. 로펌에서 수임을 위해 변호사들이 적극적으로 고객을 만나고 설득하는 ‘수요자 중심’ 구조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발로 뛰는 로펌들= 법률 문제 발생 단계에서 사건을 수임하려는 로펌 변호사들의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
태평양 오 변호사는 “법률 분쟁으로 비화할 만한 사건이 어디에 있는지 평소 각종 정보 루트를 통해 안테나를 세우는 일이 중요해졌다”고 귀띔했다.
‘다른 로펌으로 사건을 많이 준다’ 싶은 회사가 있을 경우 로펌차원에서 관리에 들어간다. 기업 법무팀 뿐만 아니라 세금이나 회계 관련 업무의 주무 부서인 재경팀 관계자들까지 변호사들이 찾아가 로펌 소개에 열을 올린다.
사건수임 제안서도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간단한 쟁점 정리와 변호사들의 이력서가 주를 이뤘으나 이제는 쟁점, 대응 방안, 승소율 분석까지 정성껏 적어서 제출한다. 분량도 보통 20쪽 안팎이었으나 이제는 30~40쪽으로 늘었다.
법무법인 광장의 임성우 변호사는 “실력면에서 보면 막상막하라고 할 수 있는 대형 로펌간의 경쟁이 워낙 치열해지다 보니 앉아서 고객을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클라이언트도 까다로워져= ‘똑똑해진’ 클라이언트들도 로펌들의 수임 전쟁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
어떤 회사에서 법률 문제가 생긴다면 법무팀이 로펌들을 상대로 “소송계획안과 예상비용을 한번 제출해보라”고 연락을 취한다.
이를 바탕으로 로펌들을 비교ㆍ평가하며 수임 비용을 깎거나 더 나은 법률 서비스를 요구한다. 신한금융지주 법무팀 최재형 과장은 “회사 내규상 소송 사건 담당 로펌을 선정할 때는 받드시 수임제안서를 받도록 의무적으로 규정돼 있다. 제안서를 받아서 대응방안, 과거 소송 경험, 비용 등을 비교해보고 로펌을 선정한다”고 말했다.
사내 변호사들의 역할도 크다. 같은 ‘선수’인 변호사들로 시어머니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 로펌의 실력이나 비용이 부풀려져 있는지 꼼꼼히 따지는 것이 이들의 주요 업무다.
예금보험공사 법무팀 관계자는 “학연ㆍ지연ㆍ안면 등은 통하지 않고 로펌에서 제공하는 법률 서비스, 변호사의 전문성, 비용 등의 객관적인 근거를 보고 로펌을 선정한다”고 설명했다.
입력시간 : 2007/08/19 1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