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깊은 벙커에 빠진 느낌입니다.”(삼성그룹 고위임원).
삼성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삼성의 독주를 경계하는 사회 일각의 ‘삼성공화국론’에다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한 헌법소원 제기에 이어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에 이르기까지 바람 잘 날이 없다. 게다가 경영환경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주력기업인 삼성전자의 실적까지 부진하게 나오자 분위기도 착 가라앉는 모습이다.
특히 헌법소원 제기 이후 정부와 여당쪽에서 공정위에게 강제조사권을 부여할 움직임을 보이는 등 강경책을 잇따라 내놓는 부작용(?)까지 생겨나 고심을 더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난감하다”는 것이 삼성의 전반적인 기류다. “억울하다” 또는 “위험하다”고 하면 거대기업의 ‘엄살’이란 소리가 나오고, 헌법소원의 예에서 보듯 원칙적으로 대응하면 거대기업의 ‘오만’이란 비판이 제기되는 등 늘 견제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전경련과 대한상의 등 재계가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이 위헌소지를 안고 있다는 주장을 연이어 내는 등 측면지원을 해 주고 있지만 이마저도 “마냥 달갑지는 않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물론 삼성 입장에서는 이 같은 사회일각의 ‘반삼성 정서’가 억울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삼성이 한국경제에 미친 영향과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곧바로 “삼성이 한국경제를 먹여 살린다는 얘기냐”는 삐딱한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라 별다른 대책도 없다는 입장이다. 무슨 대책이 나오더라도 맞서 싸우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한동안 일각에선 “‘삼성’이란 상품성에 기댄 비판을 위한 비판”이란 불만도 터져 나왔지만 지금은 이런 반응 자체도 자제하는 분위기다. 삼성 관계자는 “어떤 사안이든 ‘삼성’이란 이름이 들어가면 사람들이 주목하는 묘한 상황이 돼 가고 있다”며 “이를 대놓고 반박해봤자 일부 비판하는 쪽의 목소리만 더 커지는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
“그냥 삼성경계론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국가 대표기업으로서 경제기여도를 높여 ‘국민기업’으로 인정 받는 길 밖에는 없다”는 지난달 초 사장단 회의 결과 이상의 대책은 없다는 것이 삼성의 가장 큰 고민이자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