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경제현안을 비교적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현실감각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에 비해 실용주의적인 면모가 강해졌다는 인상도 남겼다. 경제를 중시하고 있다는 점은 무엇보다 눈에 띄는 대목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일자리 창출`을 꼽았을 만큼 경제분야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회견의 3분의 2 가량도 경제분야에 집중됐다.
그렇다고 정쟁이 수그러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노 대통령은 정치와 경제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 경제분야에서는 야당과 적극 협조하면서도 정치에서는 지금과 같은 구도를 유지할 방침임을 내비쳤다.
◇성장과 효율 중시=참여정부 출범 초기의 모토였던 `성장과 분배의 조화`대신 성장이 중시되고 있음이 감지된다. 노 대통령이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고 가장 효과적인 소득분배 방안”이라고 강조한 대목에서도 `성장하면 복지와 분배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인식을 읽을 수 있다.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참여정부 출범 초기의 기본 원칙과 비슷하면서도 미묘한 차이가 나타나는 대목이다.
단순한 원론에 사로잡히기 보다 경제를 탄력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용한다는 점에 눈에 들어온다. LG카드 처리과정에서 `신관치`논란이 있었다는 질의에 대해 노 대통령은 “중요한 것은 관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시스템의 왜곡을 낳을 것이냐, 아니냐와 후유증이 남길 것이냐의 문제”라고 대답했다. 희든 검든 쥐를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黑猫白猫)라는 실용주의적 사고가 엿보인다. 시장의 자율에 맡기는 원칙주의자로 알려졌던 이전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명분, 원칙 강조는 여전=그렇다고 노 대통령이 명분보다는 실리 중심으로 돌아섰다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경기회복 부진과 노사관계 문제, `불확실성`의 원인 등을 묻는 질문에 노 대통령은 단호하게 원칙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선 `경제상황이 안좋고 경기회복이 느리다`는 지적에 대해 노 대통령은 “지난 1년동안 착실하게 안정되게 경제를 관리해 온 것이 성과”라고 답했다. 지난해 경제가 좋지 않았다는 일반 인식과 거리가 있어보이는 답변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경제여건이 IMF보다 안좋았는데 이만큼이나마 경제를 지켜낸 것은 다행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용불량자 문제와 신용카드 불안에 대해서는 카드채가 90조원에 달한다는 수치를 정확하게 인용할 정도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냈다. 대통령은 신용불량 문제로 소비가 쉽게 살아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질 경우 투자가 살아나고 경기회복 시기도 단축시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치와 경제는 별개=지난 한해동안 불확실성이 경제의 걸림돌이었으며 총선을 앞두고 경제가 뒷전으로 밀릴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노 대통령은 정치상황은 분위기일 뿐이라고 답했다. 경제와 정치는 별개라는 얘기다. 특히 `불확실성`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적어도 정책에 있어 불확실한 게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되물어 불만과 자신감을 동시에 표시했다.
노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회와 노사분규가 한창이던 지난 86년부터 88년 사이에도 두자릿수 성장했다며 총선은 경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경제를 위한 정쟁 중단 요구과 달리 경제는 경제대로 챙기면서 정치일정 역시 중시한다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권홍우기자 hongw@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