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5월 25일] <1705> 크레섭의 전쟁


SetSectionName(); [오늘의 경제소사 5월 25일] 크레섭의 전쟁 권홍우 편집위원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양측은 포로를 교환하고 잠정적인 경계선을 인정한다.' 영국왕 조지 2세의 중재로 1738년 5월25일 런던에서 맺어진 평화협정의 골자다. 협정으로 양측의 5년 전쟁은 일단 멈췄다. 협정 당사자는 펜실베이니아와 메릴랜드. 이 대목에서 의문이 나올 만하다. 영국 식민지끼리 전쟁이라니! 답은 질문 속에 숨어 있다. 같은 식민지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서로 독립적인 법률체계와 행정권을 지녔기에 갈등과 분쟁이 적지 않게 일어났다. 펜실베이니아와 메릴랜드 간 전쟁의 발단은 식민지의 발전과 경계선 해석을 둘러싼 대립. 펜실베이니아는 북위 39.36도 이상의 땅을 영토로 점유한 반면 메릴랜드는 40도 이하의 땅을 경계선으로 여겼다. 가뜩이나 영토가 좁은 메릴랜드의 불만은 인구가 늘고 경제가 발전할수록 높아졌다. 메릴랜드 사업가들이 대형 하천인 서스쿼해나강에 페리를 운영하고 개척민들이 분쟁지역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1730년대 초부터는 충돌이 빈발했다. 개척민 토머스 크레섭이 분쟁지역에서 린치를 당하자 메릴랜드는 1736년 두 차례에 거쳐 무장병 320명을 보냈다. 펜실베이니아도 민병대를 배치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영국왕의 중재로 양측은 한발씩 물러났다. 사상자 없이 포로만 발생했을 뿐 농가 몇 채가 불타고 가축이 강탈 당한 정도의 충돌이었으나 '크레섭의 전쟁(Cresap's War)'으로 불린 식민지 간 영토분쟁은 간헐적으로 이어지다 1767년 정확한 측량으로 메이슨딕슨 라인이 확정된 후에야 끝났다. 만약 독립전쟁이 없었다면 식민지끼리 대규모 영토전쟁이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내전은 미국의 숙명이었을까. 19세기 초부터 북부와 남부를 가르는 경계선으로 자리잡은 메이슨딕슨 라인에 잠복된 갈등은 끝내 남북전쟁으로 이어졌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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