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스웨덴의 '교도소 복지'

얼마 전 치러진 스웨덴 총선에서 흥미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12년간 집권하던 중도좌파연합이 패배하고 스웨덴 복지 모델의 변화를 주장하는 중도우파연합이 승리한 것. 일부에서는 스웨덴 복지 모델이 폐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예측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의석 차이는 불과 7석. 득표율상으로 보자면 1.9% 차이이다. 지난 74년 가운데 65년을 좌파가 단독, 혹은 연립으로 정권을 담당했을 만큼 좌파의 영향력이 강한 스웨덴에서 복지 모델의 완전 폐기는 섣부른 예측 같아 보인다. 쾌적한 고급 아파트같은 시설 우파연합을 이끈 라인펠트 온건당 당수는 2002년 총선보다 더 완화된 개혁정책을 들고 나와 고장 난 부분만 수리할 뿐 복지국가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줬고 이는 총선 승리의 결정적 원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웨덴의 총선 결과를 접하면서 떠오른 얼굴들이 있다. 3년 전 스웨덴 교도소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당시 필자는 스웨덴의 교정 행정 시스템과 교도소를 취재하러 그곳을 방문했다. 우리의 실정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찾아갔지만 방문하는 곳마다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현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복지국가의 면모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일단 교도소 내 주거 환경이 놀랍도록 쾌적했다. 심지어 호화스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여자교도소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교도소 건물 2층에 마련된 모범수들의 공간은 서울 강남의 고급 아파트 거실을 연상하게 했다. 3명의 수감자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각자 별도의 침실이 따로 있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넓은 부엌에는 대형냉장고와 싱크대, 공동거실에는 안락한 대형소파와 탁자ㆍTV 등이 마련돼 있었다. 안내를 하던 스웨덴 교도소 당국자에게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호텔보다 여기가 더 좋으니 머물고 싶다”고 농담을 할 정도로 쾌적한 생활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마약사범으로 수감 중인 여성수감자는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며 패션잡지를 보면서 촬영에 응했다. 소일거리로 잡지를 보거나 자기 방에서 TV를 보기도 한다. 그녀는 디스커버리 채널로 다큐멘터리를 자주 본다고 했다. “이 정도면 감옥 생활도 편하겠다”고 말을 건넸더니 그녀는 “어서 빨리 이곳에서 나가 다시는 들어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유를 너무도 그리워하고 있었다. 자유를 구속하는 것만으로 그녀에게는 커다란 징벌이었다. 이곳뿐 아니라 다른 교도소도 몇 군데를 더 방문했는데 시설의 차이는 좀 있었지만 하나같이 쾌적한 환경 속에서 수감자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가족이 면회를 오면 수감자가 가족들과 하루 이틀 같이 지낼 수 있는 공간도 교도소마다 따로 마련돼 있다. 이용 횟수에 제한이 따르지만 가족면회소 역시 집과 똑같이 부엌에서 거실ㆍ침실까지 마련돼 있다. 이렇게 스웨덴 교정 당국은 수감자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바깥 세상으로의 이동만 일정기간 제한할 뿐이었다. 남자교도소 역시 여성간수가 별다른 보호장비 없이 수감자들이 가득한 복도를 다니며 마치 친구처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촬영 장비를 갖고 남자교도소 복도에 들어설 때에는 혹시 취재를 못마땅해 하는 수감자들이 거칠게 나오는 것은 아닌지 나름 긴장했으나 마치 직장기숙사를 방문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교도소 내 분위기는 편했다. 오히려 먼 데서 온 취재진이 단조로운 일상에 활력소가 됐는지 인터뷰하고 싶다고 나서는 수감자들도 있었다. 촬영 중에 오히려 필자에게 이것저것 질문하고는 했다. 모두들 취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줘서 참 신기하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교도소 생활을 할수록 더 거칠어지고 더 많은 범죄기술을 배워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스웨덴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수감자 새삶 준비공간 역할 여자교도소의 수감자들은 교도소에서 나오는 각종 수당을 모아서 사정이 훨씬 열악한 동유럽 여죄수들에게 돈을 보낼 정도였다. 복지국가의 수감자들은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며 내심 감탄했었다. 스웨덴의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교도소 생활은 분명 새 출발을 준비하는 공간이 되고 있었다. 취재기간 동안 친하게 지낸 수감자 중에 살인죄로 복역 중인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간수들의 추천을 받아 인터뷰에 응할 만큼 모범적인 수형 생활을 하고 있었고 노트북컴퓨터로 신학공부 중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흉악범죄도 줄어들고 재범률도 낮다. 스웨덴 집권세력의 교체로 촉발될 복지 모델의 변화가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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