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신도시에 빼앗긴 일터

“근근이 살아왔는데 이번에 공장이 수용되는 바람에 재기가 아예 불가능해졌습니다. 적자내는 중소기업은 토지보상비도 적어 도저히 갈 곳도 없고요.” 지난 62년부터 45년간 화성 동탄에 제약공장을 운영해온 S사장. 97년 외환위기 때 거래처 부도로 자금사정이 나빠지면서 부도를 맞았지만 그 후 온갖 고생을 하면서 겨우 회사를 끌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최근 사업을 접기로 마음먹었다. 채권기관도 주주도 아닌 신도시 발표 때문이다. 그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동고동락해왔던 수백명의 직원들과 마주치기도 미안할 정도다. 알짜 중소기업 사장이라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 수도권에서 공장을 신ㆍ증축할 수 있는 땅을 찾기가 이제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동탄2신도시 부지에 자리한 중소기업은 700여개. 이들은 멀쩡한 공장을 옮길 수밖에 없다는 것도 화가 나지만 신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골프장은 그대로 두면서 공장만 나가라고 하는 것은 ‘너무 한 것 아니냐’며 흥분했다. “정부는 도대체 무엇이 우선순위에 있는지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보상금액이 커서 골프장은 둔다고요? 골프장보다 공장 보상비용이 아마 더 많을 겁니다.” 전국의 부동산 열풍이 기업 현장에 미치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부동산 투기에 이어 정책순위에서도 밀리면서 기업 사기가 완전히 꺾였다. 동탄의 경우 신도시 계획으로 인한 다소 극단적인 상황이라고 쳐도 땅 투기로 몇 배 이문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중소기업 사장들은 두 다리의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인천에서 2대째 섬유공장을 운영하다가 어쩔 수 없이 사업을 접게 된 K사장은 부동산이라면 혀를 찬다. “가업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만 ‘손에 기름때 묻는 일은 안 하겠다’는데 어쩌겠습니까. 그 녀석은 잘만 하면 대박 터진다고 분당에 부동산 회사 사무실 차려놓고 무슨 짓을 하기는 하는데….” 기업은 고용과 수출을 책임지는 경제 동력이다. 급등한 땅값은 기업의 경쟁력뿐 아니라 나아가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서서히 갉아먹는다. 대기업에 밀리고 부동산에 치인 중소기업인이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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