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 해의 가난한 섬나라 아이티에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최악의 지진 참사로 수만명이 목숨을 잃고 난민이 발생하는 등 대재앙이 벌어진 탓이다. 최빈국 아이티는 현재 국가 기능을 잃었고 약탈이 자행되는 등 무법천지로 전락했다. 똑같은 지진이 선진국에서 일어났다면 상황은 어떻게 전개됐을까. 모르긴 해도 이 정도로 한 순간에 무너지진 않았을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 경제학과 교수이자 아프리카 빈곤 전문가인 콜리어는 가난한 나라들의 사정은 세계화가 진행되면 더 악화되고 10억 인구는 슬럼지대에서 허덕일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아이티의 사례는 극단적인 예에 불과할 뿐이며 수십년 뒤에는 돌이키기 어려울 것이란 주장이다. 저자는 세계 50개국 10억 인구들이 직면한 빈곤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최빈국 나라들이 빈곤의 늪에서 허덕이는 이유는 무얼까. 콜리어는 빈곤국가들이 '4가지 덫'에 빠져 있다고 설명한다. ▦분쟁의 덫 ▦천연자원의 덫 ▦나쁜 이웃을 둔 내륙국의 덫 ▦작은 나라의 나쁜 통치의 덫이 그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분쟁의 덫은 내전과 쿠데타를 가리킨다. 어떤 나라에서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그 나라가 가난할수록, 성장률이 낮을수록, 그리고 천연자원이 많을수록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것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가 된다는 저자의 설명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경제학계에서는 풍부한 천연자원이 경제성장을 오히려 어렵게 한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는 자원 수출로 외화가 국내로 많이 유입되는데 이 때문에 통화 가치가 올라 제조업 상품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트린다는 것. 여기에 나쁜 이웃을 둔 내륙국이라는 공통점도 발견된다. 우간다나 차드 처럼 내륙에 있는 나라는 해안까지 가기 위해 주변국을 통과해야 하는 불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최빈국 중 38%가 이런 내륙국에 해당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끝으로 밑바닥 국가의 4분의 3은 대체로 아주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집단의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데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위해 제도를 만들며 정책을 집행한다. 결국 나쁜 통치의 올가미에 걸려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셈이다. 저자의 신간이 제프리 삭스의 '빈곤의 종말'이나 윌리엄 이스털리의 '백인의 부담' 등과 차별되는 이유는 군사적 개입 등과 같은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했다는데 있다. 저자는 빈곤의 사슬을 끊기 위해 마구잡이식 개발원조를 지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원조 자금이 부패한 관리들에 의해 빼돌려지고 군사비로 전용되는 현실을 우려한다. 대안으로 선진국이 제시하는 정책이행 조건을 원조수혜국이 잘 이행하느냐에 따라 원조 규모를 조정하는 등 유연하게 정책을 운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두번째 빈곤 해법으로 선진국의 국내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최빈국에서 빼돌려진 검은 돈이 선진국 은행에 투자되는 것을 막고, 선진국 기업들이 최빈국에 투자할 때 그 나라 정부에 뇌물을 주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해결책으로 군사적 개입을 빼놓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밑바닥 국가들은 자체적으로 평화와 질서를 유지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UN평화유지군이나, EU의 신속대응군 처럼 국제사회의 협력에 의해 창설된 군대가 분쟁 초기에 신속히 개입해 분쟁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