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UCC, 괴물 혹은 수호천사

최근 있었던 버지니아공대 참사에 세계인이 경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귀한 젊은 영혼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여러 번 나타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영상을 맨 처음 전세계에 전한 것은 세계적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미국의 CNN이 아니라 인터넷에 오른 짧은 동영상이었다. 평온한 대학의 아침에 정적을 찢는 몇 발의 총소리와 함께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한 어떤 학생의 흔들리는 동영상은 그 당시의 상황을 생동감 있고 자극적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이렇듯 소위 사용자제작콘텐츠(UCC)는 이제 전세계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현장 TV’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지난 겨울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소녀가 자기 목도리를 벗어 선뜻 길거리에 앉아 있는 노숙자 할아버지의 목에 둘러주는 사진이 인터넷에 올랐다. 순식간에 이 사진이 퍼져나갔고 소위 ‘목도리녀’가 탄생됐다. 또한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여중생 집단폭행’ 동영상은 하루 동안 판도라TV 한곳에서만 115만번의 페이지뷰가 집중되면서 전국에 분노의 파장을 가져왔다. 이처럼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면서 활자(글)로만 유통되던 정보들이 이제 동영상이라는 보다 강력하고 자극적인 방법을 통해 이전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속도감 있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이 만드는 이 같은 동영상들의 소재는 기상천외한 것에서부터 유명 인사들의 자그마한 실수에 이르기까지 흥미롭고 무궁무진하다. UCC는 이제 세상의 구석구석을 모두 보여주는 ‘살아 있는 메신저’로서 그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의 진면목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게임, 쇼핑, 광고 및 기업의 마케팅 등에 UCC가 대거 활용되면서 UCC는 통신 분야에서도 새로운 산업의 장을 열고 있다. ‘광고’ 분야에서는 제품에 대한 만족도를 측정하고 제품 광고도 사용자 반응으로 대신하는 이른바 ‘고객 맞춤형’ 동영상 광고가 부상할 것이 예상된다. 최근 생산되고 있는 3세대(3G) 영상휴대폰들은 이러한 추세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와 뛰어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작은 벤처기업들이 세계에서 제일 먼저 우리나라에 봄꽃이 피듯 한꺼번에 개화하리라 기대된다. 그런데 이처럼 정보기술(IT) 업계의 새로운 스타로 부상하고 있는 UCC는 바로 그 ‘자유로움’이라는 본질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보통 사람들’에 의해 제작되는 UCC의 특성상 그 ‘대중’이라는 익명성으로 별 법적 제재를 받지 않기에 저작권 침해, 폭력, 음란물 제작 등의 부정적인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많다. 또한 이런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 같은 문제도 자주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활자 텍스트만 올라오는 경우보다 동영상은 그것의 직접성과 현장감 때문에 훨씬 더 강력하고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대통령이 하품했다는 ‘글’은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동영상으로 그 모습이 인터넷에 뜬다면 그것은 일종의 ‘충격파’로 사회에 번질 수 있다. 시각적 이미지가 주는 강렬하고 순간적인 인상은 긴 숙고(熟考)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글을 읽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UCC의 미래는 정부의 ‘규제’와 일반인들의 ‘흥미’ 또는 ‘장난’과의 격렬한 싸움으로 그 첫 라운드를 시작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인터넷은 우리나라 정치를 크게 변화시켰다. 남녀노소, 학식과 부, 신체 등 조건에 따른 차별 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익명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인터넷은 바로 민주주의의 기본정신과 100% 부합하는 산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곧 대선이 다가온다. 대선 참모들은 어떻게 UCC를 활용할까 고심할 것이다. 지난 1월 말 열린 ‘UCC를 활용한 선거전략’ 설명회에 대선 관련자들과 규제 당국 등이 한꺼번에 몰려 성황을 이뤘다는 보도가 있었다. ‘성황’이라기보다 심각하게 우려할 상황일 수도 있다. 이번 대선과 UCC의 자못 심각한 관계를 반증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모 일간지에서도 ‘2002년 대선은 인터넷 대선이었고 이번 2007년 대선은 UCC 대선일 것이다’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제 UCC를 통한 ‘평등, 비밀, 직접 참여’의 선거는 우리나라 정치 풍토를 다시 한번 크게 바꿀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보면 현재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대선 당시 몇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후보로서의 지명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도 ‘인터넷의 힘’이었다. 마찬가지로 UCC 역시 한 무명 후보를 두세 달 안에 국가적 인물로 부상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살아 있는 TV’인 UCC는 후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찍어 24시간 보도하는 놀라운 힘을 보여줄 것이고 후보들에게는 이 UCC가 공포의 ‘괴물’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기회의 장(場)을 제공하는 ‘수호천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유명 후보’보다는 오히려 참신하고 감성이 풍부한 인물이 그가 쌓은 ‘덕(德)’으로 베풀어지는 ‘운(運)’을 타서 순식간에 2007년 대선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참으로 재미있는 세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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