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4년 시단에 데뷔했으나 타고난 과작에다 정제된 시에 대한 집념으로 시집 출간을 미뤄오던 시인 권명옥(64ㆍ세명대 교수)씨가 첫 시집 ‘남향(南向)’(열화당)을 펴냈다. 시인은 스승 박목월 선생이 창간한 시전문지 ‘심상’(心象)을 통해 등단했다. 그의 시는 당시 문학평론가 김현, 시인 오규원 등에 의해 극찬에 가까운 찬사를 받았으나 그는 이후 거의 침묵 속에 잠적해 버리기도 했다. 이번에 펴낸 시집 ‘남향’엔 ‘배론’등 43편의 시를 수록했다. 권명옥의 시는, 그가 평생 탐구해온 언어의 본질에 대한 탐색과 성서적 모티프가 돋보인다. “성지(聖地) 배론은/여름 저녁나절 감나무 서늘한 그늘 아래 앉으신/이제 스물을 갓 넘긴 애띤 슬픈 여인/무릎에/장년(壯年)한 늙은 아들의 시신(屍身)을 안아 누이시고 하염없이 또//사(赦)하시다.” (‘배론’ 전문) 젊은 성모 마리아가 장년한 아들 예수의 시신을 무릎에 안아 눕힌 채 그러나 그 슬픔과 아픔 속에서도 이 세상의 죄를 사(赦)하신다는 내용을, 가톨릭 성지인 배론에서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 최근 시단의 물량주의를 경계하면서 “오염물의 범람 시대에 노아의 방주로 살아남을 진정한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