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전쟁시대, 이순신을 만나다 지용희 지음/ 디자인하우스 펴냄
“영국의 넬슨은 인물이 못된다. 해군 역사상 군신이라고 할 제독이 있다면 이순신 한 사람뿐이다. 이순신과 비교하면 나는 하사관도 못된다”
러일전쟁 때 러시아 수군을 무찌른 일본의 해군제독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가 자신을 군신(軍神)이라 찬양하는 주변의 칭송을 반박한 말이다. 그는 러시아 함대와 일전을 치르기 위해 이순신 장군의 영혼에 기원하는 의식을 갖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일제 때는 일본의 해군 사령부가 있던 경남 진해에서 약 40km 떨어진 통영 충렬사에 가 주기적으로 진혼제를 지내는 것이 일본 해군의 중요 행사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이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한 우리 근세사의 최고 명장이다. 특이 왜란 7년간의 활약에서 온갖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17전 17승을 거둔 그의 용병술과 지략은 세계 해전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전쟁은 고독한 전쟁이었다. 평생 3번의 파직에 2번의 백의종군을 경험한 그는 용장들을 죽음으로 모는 당시 조정의 모략과 음모에 대해 깊이 번민하며 좌절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왜군이 패퇴하는 노량 앞바다의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한 그를 두고 전란 직후부터 자살설 등이 끊임없이 제기돼 오기도 했다.
이번에 나온`경제전쟁시대, 이순신을 만나다`는 이순신 장군의 삶과 행동을 통해 IMF 위기이후 경기 침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경제를 되살리는 지혜와 교훈을 얻고자 시도한 책이다. 서강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학생들을 상대로 `이순신 경영학`을 개설해 화제를 낳기도 한 저자는 약 7년간의 기획과 답사, 조사와 집필을 통해 이 책을 완성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순신의 청렴결백과 위기관리 능력, 유비무환의 자세, 솔선수범과 인간애에 바탕을 둔 리더십, 용기와 결단, 거북선 개발과 같은 창의성, 철저한 기록정신, 뛰어난 정보활용 능력과 전략 등은 오늘날 경제전쟁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주장한다. 특히 저자는 우리가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이순신이 보여준 청렴성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발표에서 부정부패가 적고 투명성이 높은 나라일수록 국가 경쟁력이 높게 나타나듯이 정치인, 공직자들을 비롯한 국민들의 청렴결백은 경제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기업들도 경영투명성을 높이고 윤리경영, 정도경영을 추진하는 기업일수록 국제경쟁력이 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이 책은 크게 8파트로 나눠진다. 제1장과 8장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해당하고 나머지 6개 장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행로를 따라 가며 구체적으로 우리가 배워야 할 사항을 적시한다. 학익진으로 적을 무찌른 한산대첩에서는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장군의 용병술을, 백의종군하며 조선 수군을 재건하는 대목에서는 병사들과 민중에 대한 장군의 한없는 신뢰를, 해류를 거슬러 폭이 좁은 진도 앞바다 울둘목에 12척의 배를 몰아 넣는 명량해전에서는 장군의 불굴의 정신과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각각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백병전에 약한 조선 수군의 전투력을 보강하고 적의 약점에 대한 공격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든 거북선은 장군의 현실 타개 의지와 무한한 창의력을 상징한다. 왜란기간 2,539일간의 참전 기록인 난중일기는 지난 일을 끊임없이 반추하며 앞날의 실수를 용인하지 않으려는 자기 반성이자 적에 대한 정보 수집록이다.
사실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는 지난 군사정권시대 국가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의 무조건적인 강조로 어느 사이 관제 이미지를 강하게 드리우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시점에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평가가 새롭게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우리의 이순신에 대한 연구가 부진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에 대한 연구가 오히려 바람직한 방향성을 잃어 버렸던 측면이 많다”면서“국제 무대에서 경제 전쟁이 더욱 치열해 지고 우리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는 이 때 군대는 물론 정부와 기업, 학계 등 각계각층에서 이순신을 통해 현재를 타개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혜안을 얻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강동호기자 easter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