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이 존폐의 기로에 서며 지난 2003년 6월30일 첫 삽을 뜬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남북 화해와 경제협력의 상징으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개성공단은 남북 관계가 극한의 빙하기로 빠져들면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으로 변해버렸다.
북한이 지난해 12월 개성공단 상주인력을 절반으로 제한하고 올 3월9~20일 한미 합동군사훈련 기간 중 세 차례 방북 육로를 차단한 데 이어 3월30일 개성공단 현대아산 직원 유모(44)씨를 억류하며 위기상황을 조장, 개성공단에는 파국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남북이 분단된 지 50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이 손을 잡고 탄생시킨 개성공단 사업이 출범 5년 만에 뿌리째 뽑힐 수 있는 위기를 맞은 것이다.
김영탁 통일부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과 문무홍 개성공단관리위원장 등 우리 정부 당국자 9명은 21일 북측과 개성공단 관련 현안을 협의하기 위해 방북했다. 남북 당국자들이 남북 간 현안을 협의하기 위해 만나는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이다.
우리 측 대표단은 이날 오전8시40분께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를 출발, 9시2분께 개성공단관리위원회 사무실에 도착했다. 남북 당국자 간 접촉은 당초 오전10시께 이뤄질 예정이었지만 접촉장소를 놓고 남측은 개성공단관리위원회 사무실을, 북측은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사무실을 주장하면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앞서 북측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16일 남측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 통지문을 보내 ‘중대 문제를 통지할 것이 있으니 개성공단관리위원장은 개성공단과 관련한 책임 있는 정부 당국자와 함께 21일 개성공단으로 오라’고 통보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4월5일) 이후 우리 정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가입 방침으로 남북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만큼 개성공단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이 때문에 개성공단 파행의 원인을 두고 남북이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2월 말 현재 101개 기업들의 안전과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위해 우선 남북이 결단의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금처럼 남북이 서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상대방 탓만 하고 남북 경색의 근원적인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면 결국 개성공단은 물론 남북 관계가 파국을 피하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양무진 경남대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금처럼 남북 간 신뢰가 금이 간 상황에서는 결국 남북 지도자의 통 큰 결단과 의지 없이는 위기국면 해소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개성공단을 둘러싼 분쟁이 생길 경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 마련도 급선무로 꼽힌다. 이번 개성공단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의 억류사태에서 볼 수 있듯 남북 간 분쟁의 소지가 있는 사건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개성공단과 관련한 남북 중재 또는 조정위원회를 갖춰야 한다. 개성공단과 관련한 남북합의서에는 개성공단에서 문제가 터지면 상사중재위원회의 합의를 거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명시해놓았지만 실제로 이 같은 중재위원회는 구성되지 않은 채 사문화된 상황이다.
또한 국제법적인 효력이 약한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지구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 ‘동ㆍ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통행ㆍ통신ㆍ통관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합의서’ ‘개성공업지구법’ 등도 확실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