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국 내수시장 개척 차 청두(成都)를 다녀왔다. 티베트고원을 병풍 삼아 중국 내륙 깊숙이 들어앉은 청두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싱가포르에서 비행기로 4시간 거리였지만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짙은 안개 탓에 중간 지점에 불시착하고 말았다. 비좁은 비행기에 갇혀 대여섯 시간을 보내고, 출발한 지 10시간이 지나서야 청두 상공에 이르렀다. 희뿌연 안개의 허물이 벗겨지는가 싶더니 네온사인으로 채색된 청두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깊숙한 내륙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함이 의외이기는 했지만 말로만 듣던 소비도시로서의 위용에는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내륙에 감춰진 소비 도시위용
‘주머니 쌈짓돈 여는 데 인색한 중국 소비자’라는 선입견이 이곳 청두에서는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독일제 폭스바겐 자동차 판매량 전국 1위. 1,100만 인구에 백만 대가 넘는 자동차가 굴러다니고, 자동차 보유 대수도 중국에서 베이징ㆍ광저우 다음이다. 이런 소비성향 때문에 청두는 일본ㆍ홍콩ㆍ대만기업들의 중국 서부시장 개척을 위한 베이스캠프가 되고 있다. 상하이ㆍ베이징ㆍ칭다오 등 제1선 시장인 연해 대도시가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제2선 시장의 중심에 있는 청두가 그 다음 표적이 되고 있는 셈이다.
청두는 3내(내수ㆍ내륙ㆍ내치) 정책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도시다. ‘내수를 진작하고 내륙을 개발하며 국민을 다독거리겠다’는 3내 정책은 중국정부가 2000년대 들어 채택한 정치경제 정책의 핵심이다. 중국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청두는 2000년 고도(古都)의 긴 잠에서 깨고 있다. 서부 대개발의 중심으로서 서남지역 최대의 물류 집산지로서의 경제적 가치를 더해가고 있다.
청두만 주목을 받고 있는 건 물론 아니다. 청두의 동북쪽에 위치한 시안 역시 동서남북을 관통하는 물류중심지라는 장점을 가진 도시다. 앞으로 소매유통이 크게 일어날 지역으로 전해진다. 중국의 대표적인 공업도시인 우한ㆍ창사ㆍ정저우와 가까운 것도 앞으로 시안이 공업도시로 탈바꿈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처럼 중국 중서부 내륙에는 아직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구매력을 갖추면서 크게 성장할 도시가 많다.
특히 ‘내수’가 요즘 중국 경제의 최대 화두로 등장하면서 내륙 도시의 발전은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자금 800조원이 살포되면 각종 사회간접자본(SOC) 건설로 건자재ㆍ건설장비 수요가 크게 늘 것이다. 농민들의 가전제품 구매를 늘리기 위한 중국 정부의 ‘가전하향(家電下鄕)’은 이미 시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 기업이 중국 내륙 내수시장에 눈을 돌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중국 내륙시장을 뚫기는 만만치 않다. 우리 제품을 청두까지 보내자면 우선 상하이 항구까지 가야 한다. 트럭으로 옮겨 실은 화물이 청두까지 가자면 또 일주일이 걸린다. 바로 옆 나라라고는 하지만 결코 가깝지가 않다. 납기 맞추기가 어려운 이유다. KOTRA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공동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작년까지 3개이던 중국 내 공동물류센터를 올해는 6개로 늘린다. 청두에는 2005년부터 운영하고 있고 올해는 시안에도 설치한다.
현지 유통망 활용등 시급
현지 유통망을 활용하는 일도 시급하다. 이번 중국 방문 기간 중에 청두 최대의 번화가에 자리 잡은 일본계 유통매장 이토요카도를 찾았다. 올 10월 개최하는 한국 상품 판촉전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곳에도 한류가 있었다. 매장 관계자는 한국 의류와 화장품을 찾는 중국인 마니아들이 많다고 했다. 중국 서부지역의 큰손이라는 이토요카도가 한국 상품 판촉전을 반기는 이유라고 했다. 이를 포함 올해 중국 각지의 9개 대형 유통업체와 공동으로 한국 상품 판촉전을 계획하고 있다.
청두는 촉나라의 수도였다. 친링과 양쯔강의 험로 덕분에 난공불락의 요새이기도 했던 곳이다. 그렇게 감춰져 있던 청두가 중국 내륙의 거대 소비시장이 되어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