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11월 2일] 소비자는 먼 곳에

#1. 30여년 동안 지방 도시에서 공무원으로 일하신 친척 아저씨는 퇴직과 함께 서점 주인으로 변신했다. 은퇴 이후 서점 주인으로 사는 게 꿈이셨지만 아저씨는 2년 만에 영업 부진을 이기지 못해 문을 닫았다. 평생 소원을 이뤄봤으니 후회는 없다고 하셨지만 경제적 손해와 정신적인 상실감은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예전에는 은퇴하면 동네에 조그만 서점을 열고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꾼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꿈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지난 10년 새 전국 서점의 절반가량이 문을 닫았다. 대자본 앞에 무너지는 소상공인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펴낸 '2010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1998년 4,800여개였던 전국 서점 수는 지난해 말 현재 2,846개로 감소했다. 2007년보다도 401개가 줄어들었는데 이 가운데 50평 미만 소형 서점은 409개가 줄어든 반면 500평 이상 초대형 서점은 2년 새 8곳이 늘었다. #2. 경영상의 이유로 건강보험 급여비를 압류당한 동네 의원은 올해 상반기에만 336곳으로 지난해 한해 수준인 302곳을 이미 넘어섰으며 압류금액도 3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내용이다(이낙연 민주당 의원). 동네의 의원급 의료기관의 폐업 수 역시 2009년 1,487곳에 이어 올 상반기 동안 946곳이나 된다고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대형 병원 쏠림 현상 때문이다. #3.기업형 슈퍼마켓(SSM)을 둘러싼 유통 대기업과 중소 상인간의 갈등은 트위터에까지 논란을 파급시켰다. 지난주 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문용식 나우콤 대표는 트위터에서 설전을 벌여 화제를 모았다. 문 대표가 트위터에서 정 부회장에게 "슈퍼 개점해서 구멍가게 울리는 짓 하지 말기를… 그게 대기업이 할 일이니"라고 반말투로 메시지를 보내면서 설전은 시작됐다. 정 부회장은 SSM에 대한 의견을 묻는 다른 이용자에게 "국회나 정부에서 정해주신 지침 내에서 고객들에게 최대 만족을 드리는 게 저희 사명"이라고 답했다. 전국 곳곳에서 동네 가게들이 잇달아 문을 닫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밀려든 글로벌화의 물결 속에서 지난 10여년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10여년 동안 동네 가게들은 못 살겠다고 아우성쳐왔고 대기업들은 법의 테두리 내에서 경쟁한 결과일 뿐이라고 주장해왔다. 대기업과 동네 가게들의 대립은 이처럼 해묵은 갈등이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상황도 거의 달라지지 않고 별달리 개선된 것도 없다는 게 문제다. 동네 병원이 문을 닫는 것은 보건복지부의 의료체계 개선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낙연 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지난 국정감사 때도 동네 의원 경영난에 대한 국회의 지적에 복지부가 1차 의료 활성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기로 약속했지만 현재까지 대책 마련이 없다"고 질타했다. 동네 서점의 불만은 변질된 도서정가제다.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 간의 갈등은 도서 정가제를 법적으로 규정해온 출판 및 인쇄진흥법의 5년 시한이 끝나면서 이미 예견된 일이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동네 골목상권을 보호할 목적으로 내놓은 SSM 규제법은 1년째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유통산업발전법과 대ㆍ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 등은 시장논리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힘겨루기로 처리가 미뤄지고 있다. 모두에 이득 되는 세상으로 동네 서점도, 대규모 서점도, 유통 대기업도, 영세 상인도 이해 당사자들은 다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에 급급하기 때문에 한쪽으로 힘이 쏠릴 경우 불균형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 당국이나 정치인이 불균형 해소에 나서야 하는데 지난 10여년간 어느 쪽 손을 들어줘야 표가 될까를 먼저 계산하는 근시안적인 대응을 해오다 보니 국민 대다수 소비자들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해 당사자 어느 한 쪽의 이익보다는 대다수 소비자들에게 이득이 돌아가는 균형 잡힌 세상, 그것이 바로 공정한 사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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