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무역흑자 줄여야 내수 산다

무역흑자 행진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45%가 넘는 수출증가율을 기록했으며 올해 경상수지 흑자 목표도 3개월 만에 조기 달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내수가 부진해 백화점이나 재래시장의 매출이 줄어들고 투자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래서 수출은 잘하고 있는데 내수가 문제라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경상수지는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통계 중 유일하게 좋게 나오고 있는 지표다. 소비와 설비투자 부진으로 내수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상수지가 그나마 희망을 주고 있다.” 어느 경제기사를 인용한 것인데 여기에는 흔히 간과하기 쉬운 맹점이 있다. 국민경제에 있어서 수출과 수입의 차이는 저축과 투자의 차이와 일치한다. 저축은 소득 중에서 소비를 안한 것이므로 흑자가 클수록 소득에 비해 소비와 투자를 덜하는 결과가 생긴다. 즉 무역흑자와 내수부진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연결돼 있는데, 특히 소득증가가 미미할 때의 대규모 흑자는 치명적인 소비ㆍ투자의 감소로 이어진다. 사상 최대인 40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한 지난 98년이 공장이나 상점이 잇달아 문을 닫고 길거리마저 텅텅 비었던 바로 그 해다. 최근 수출이 큰 폭으로 늘어나고 흑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데는 환율이 크게 기여했다. 환율전쟁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세계 각국이 환율동향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원화 환율은 달러에 대해 연간 1.3% 평가절상됐다. 일본 엔화의 8.8%, 유로화의 18% 절상에 비교할 때 훨씬 낮은 수준이다. 세계경기 호황으로 수출환경이 좋아졌다고 해도 50%에 육박하는 비정상적인 수출증가율을 기록한 것은 시장원리를 벗어난 환율의 움직임 때문이다. 정부의 공식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환율 절상을 억제해 수출경쟁력을 지키려는 강력한 정책적 의도가 반영된 것임을 숨기기 어렵다. 정부가 시장개입을 하는 데는 수출을 통해 경기침체를 극복하자는 목적과 함께 경상수지 흑자 자체를 매우 중요시하는 인식도 작용하고 있다. 흑자를 내 외환보유고를 늘리는 것이 외환위기를 겪은 아시아 국가의 공통된 특성이기도 하지만 IMF 구제금융 이후 국가부도 위기에 대한 책임문제로 정책 당국자가 법정에까지 섰던 경험이 있는 한국에서는 이것이 은연중 최우선적인 국가경제 과제로 여겨지게 됐다. 그래서 나라 경제의 전반적 상황과는 관련 없이 외환보유고를 늘리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현재 세계 제4위 1,625억달러의 외화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돈을 쌓아놓고 있다는 말은 번 만큼 쓰지 않는다는 뜻인데 한 해 전체의 수입규모와 맞먹는 돈을 묶어두고 있으니 내수가 부진한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또한 환율방어를 위해 발행한 채권의 이자비용도 만만치 않으며 흑자가 누적되면 통화팽창 압력이 생겨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의 원자재 가격 상승과 맞물릴 경우 자칫 잘못하면 경기침체 속에서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연결될 우려도 있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주식시장에서 일시에 빠져나갈 때를 대비하기 위해 많은 보유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인과관계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환율시장에 개입해 원화가치에 대한 왜곡이 생기면 그 차익을 노린 투자자금이 몰려들고 그러한 자금은 향후 필연적으로 이뤄질 환율조정 때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바로 97년 말에 우리가 경험했던 일이다. 지난해 봄부터 우리 주식시장에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금 중 상당 부분은 환차익을 예상하고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데 실물경제와 주식시장이 괴리돼 움직이는 원인이 되고 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원화 환율의 유연성이 확대되고 외환보유고에 대한 정부의 시각도 변화를 보이고 있는데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방향은 옳게 잡은 것으로 보인다. 억지로 수출을 늘려 경기회복을 도모하는 것보다는 시장기능에 따라 경제활동이 이뤄져야 내수와 무역이 균형을 맞춰 발전할 수 있다. <현정택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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