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4월10일] 프란시스 로웰

'원사에서 옷까지'. 프란시스 로웰(Francis Lowell)이 1814년 매사추세스주 월담에 세운 섬유공장의 슬로건이다. 섬유산업의 모든 공정을 한 자리에서 처리하기는 월담 공장이 세계 최초다. 영국으로도 역수출됐다는 월담형 공장의 특징은 대자본 고기술. 엄청난 자본과 최신기술이 들어갔다. 로웰은 이를 빌리거나 훔쳤다. 보스턴의 유명가문에서 1775년 태어난 그는 35살에 영국으로 여행을 떠나 2년간 직물공장의 기계를 남몰래 그리는 방법으로 산업기술을 빼내 미국으로 옮겼다. 방직기 등은 불법 복제했지만 공장의 배치와 일관형 작업공정 등은 그의 머리 속에 나왔다. 공장을 세우기에는 부족한 돈은 친지와 함께 일반대중에게 주식을 팔아 조달했다. 주식 사모사채의 미국판 원조 격이다. 로웰은 여직공 최초 고용이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미혼의 처녀들을 채용, 숙식을 제공하며 결혼할 때까지 일하도록 했다. 새로운 기술과 인력구조, 거대한 자본이 결합된 로웰의 섬유사업은 주주들에게 25.7%라는 고율배당을 할 만큼 처음부터 성적이 좋았다. 미영으로 영국산 수입면제품을 대체할 미국산 면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덕분이다. 로웰의 성공은 사람들의 투자 의욕을 자극, 미국 각지에서 220여개의 섬유공장이 새로 생겼다. 영국과 제조업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공장 설립 급증으로 나타난 셈이다. 로웰은 1817년 4월10일, 42세를 일기로 사업의 번창을 못보고 사망했지만 미국 제조업의 개척자로 기억된다. 미국 최초의 역사박물관에는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로웰의 공장이 있던 도시는 이제 로웰시(市)로 불린다. 로웰은 노동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 여성 노동운동 초기 지도자의 대부분이 로웰공장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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