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10월 22일] <1530> 존셔먼


존 셔먼(John Sherman). 독과점 규제와 금본위제도, 공황이라는 키워드로 설명될 수 있는 미국의 정치인이다. 오하이오주의 법률가 집안에서 1823년 태어난 그의 애초 행로는 엔지니어. 가세가 기울어 진학을 포기하고 운하 공사장에서 토목기사로 일했다. 독학으로 21세에 변호사 자격을 따낸 그는 정치에 눈을 돌려 31세에 하원의원에 뽑혔다. 과묵하고 냉정한 성격 탓에 '오하이오의 얼음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셔먼은 승승장구했다. 은행을 경영하던 형제들의 영향으로 의회의 금융전문가로 인정받은 덕분이다. 하원 세입위원장을 거쳐 상원에 진출한 직후 발생한 남북전쟁에서 셔먼은 물론 그의 형제들도 기회를 얻었다. 셔먼의 형으로 은행 경영 파산 상태에서 군에 복귀한 윌리엄 테쿰세 셔먼은 남부를 초토화해 '파괴자'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유능한 장군으로 부각되고 훗날 미군의 탱크(M-4)에도 이름을 남겼다. 의회에서 셔먼은 '국법은행법(1863년)'을 만들었다. 연방법으로 인정된 은행이면 국채를 준비금으로 삼아 화폐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한 국법은행법은 1913년 연방준비은행이 탄생하기 전까지 미국 화폐제도의 근간으로 작용했다. 화려한 경력으로 대통령 선거 때마다 공화당 후보로 거론됐으나 그는 단 한번도 지명되지 못했다. 통화팽창을 막겠다고 입법한 '은화주조금지법'을 '1873년의 범죄'라며 규탄한 농민과 서부 개척민들의 반대가 드셌기 때문이다. '셔먼 은구매법(1890년)'도 공황과 농민들이 정치세력화하는 결과를 불렀다. 대중적 인기하락을 의식했는지 그는 반독점법 제정(1890년)에도 앞장섰다. 셔먼 반독점법은 그가 사망(1900년 10월22일)한 뒤 20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발동됐지만 오늘날까지 세계 반독점법의 기본 모델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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