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1월 26일] <1604> 럼주 반란


상상해보자. '거친 사내들이 있고 기름진 땅이 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 쉽게 단정할 수 없지만 역사는 답을 말해준다. 답은 풍요로운 호주다. 처음부터 그랬을까. 아니다. '술'로 상징되는 기득권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에서 오늘날의 호주가 출발했다. 영국의 유형지였던 호주에는 영국인 죄수뿐 아니라 각국의 범죄자들도 모여들었다. 전체가 감옥이었던 호주 대륙은 오늘날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넘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어떤 마법이 작용했을까. 저항과 절묘한 처리 덕분이다. 호주에 영국인들이 처음으로 정착한 것은 1788년. 미국의 독립으로 갈 곳이 없어진 영국 충절파와 유형지를 찾지 못한 죄수들을 위한 땅으로 개척됐다. 백인끼리의 다툼에도 발전을 지속하던 호주 대륙은 1808년 1월26일 결정적인 전기를 맞았다. 호주 주둔 영국군대가 럼주 반란을 일으킨 덕분이다. 럼주 반란은 말 그대로 '술의 공평한 배분, 더 나아가 자유 주조를 요구한 반란'. 요즘에야 술이 군대에서 금지품목으로 묶였지만 당시는 '정량'까지 명기됐던 상황에서 식민지 주둔군이지만 군대의 정량 요구는 영국사회의 반성과 성찰을 불러일으켰디. 당장 총독과 장교들의 목이 날아간 상태에서 새로 부임한 식민지 총독 매쿼리는 비상수단을 썼다. 죄수들의 죄를 사면하고 관리로 등용한 것이다. 런던은 충격에 빠졌지만 호주는 발전을 거듭해나갔다. 호주의 장래를 영국보다 밝게 보는 시각도 많다. 결과적으로 럼주 반란이 없었다면, 그리고 당시 총독의 결단이 없었다면 오늘날 호주는 생성될 수 있었을까. 신분제도가 철폐된 지 한참 지났건만 이 땅에는 아직도 의식 속에 반상의 가름이 남아 있거나 일부러 공명첩을 사려는 사람들이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호주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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