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허울만 좋은 과학기술혁신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국내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의 자연ㆍ공학계열 입학자 통계에 따르면 지난 99년 28만여명이던 입학자가 지난해 20만여명으로 26.7%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이공계 졸업자의 취업난 심화에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과학기술부의 기본 임무는 과학기술자가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선망의 대상이 되도록 해 과학입국을 도모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학사과정뿐 아니라 대학원에서도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화하는 원인을 세밀히 분석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필자가 과학기술 분야, 특히 원자력 연구개발인력 수급과 안전 분야의 현실안주 행태에서 현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과학기술 혁신의 실체를 봤다면 과장일까. 혁신을 구호가 아닌 실천적 차원에서 다뤄야 할 원자력 분야의 현안과 대책을 이공계 기피현상 심화 등과 연관해 지적해본다. 첫째, 원자력연구원 신규부지 확보 문제다. 과학기술부와 원자력연구원은 현 대덕연구단지 부지가 작지만 더 이상 신규부지 수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는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의 주요 사업을 위한 부지를 별도로 확보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방사능’의 개연성이 있는 원자력 관련 연구개발시설의 별도 부지 확보 문제를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해외의 선진 사례를 보더라도 국립연구소 부지 규모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원자력연구원의 현 부지는 협소해 원자력진흥종합계획에 포함된 연구시설 등을 추가로 건설할 만한 여유공간이 없다. 또한 수차례 발생한 방사능 누설사건 등으로 인근 주민들의 이전요구가 거세져 안정적 연구지역이 되기에는 제약이 많다. 신규부지 확보의 필요성에 대한 혁신적 사고와 확보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둘째, 연구인력의 고령화와 노령화에 대한 대책이다. 원자력연구원의 연구인력을 살펴보면 정규직 연구원 중 36세 이상이 89%이며 비정규직 연구원 중 35세 미만이 78%다. 젊은 정규직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실제 연구의 대부분은 젊은 비정규직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원자력학회ㆍ기계학회 연차대회 등에 발표하는 논문의 상당수도 비정규직이 쓰는 것이 현실이다. 연구원의 고령화가 심각해짐에 따라 조직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효율성이 떨어진다. 또 실제 연구에 참여하는 젊은 연구인력 대부분이 신분 불안과 열악한 급여로 최저생활을 위협받는 비정규직인 상황에서는 좋은 연구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원자력연구원이 제시하는 고령화 대책은 교육기회 확대와 포상제도의 활성화 등을 통해 연구동기 강화를 추구한다는 정도에 불과하다. 연구원의 고령화 대책을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국가 경쟁력 위기를 피할 수 없다. 연구의욕 향상 차원에서 정규직의 경쟁과 퇴출이 가능하도록 제도화해야 비정규직 연구원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기회도 늘어날 것이다. 셋째, 원자력안전전문위원 및 분과위원 명단을 보면 대부분 대학교수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규제실무 경험자가 없다. 다양한 교육 및 직업 배경을 가진 인사를 원자력안전규제 위원으로 임명하는 미국 등의 사례와 확실히 비교된다. 과기부는 원자력안전기술원이 규제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에는 규제실무 경험자가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원자력안전기술원 규제업무를 확인하는 차원에서도 원자력안전전문위원에 규제실무 경험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과기부는 간과하고 있다. 또한 연도별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 분과회의 개최 현황을 보면 개최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필자가 지적한 원자력 분야의 경우만 보더라도 정부가 속으로는 과학기술 분야의 현실안주를 약속하면서 겉으로는 ‘과학기술혁신본부’까지 두고 혁신을 흉내만 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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