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소비자 집단소송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키로 한 것은 우리나라도 소비자 권익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시대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는 것을 뜻한다. 기업제품을 사서 쓰다가 피해를 입은 소비자 한명의 소송으로도 같은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소비자 권익은 크게 향상되지만 기업에겐 큰 부담이 된다.
이 제도는 90년대 초부터 시민단체 등이 도입을 추진했으나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기업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다우코닝사의 실리콘팩을 사용,유방확대 수술을 한 후 피부가 썩는 등의 부작용으로 고생한 소비자들이 집단소송으로 천문학적인 보상을 이끌어낸 것 예에서도 이 제도도입의 파장을 읽을 수 있다. 인수위와 공정위가 단계적으로 도입키로 한 것도 이 때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소비자 집단소송제는 증권의 집단소송제와 함께 소비자 구제제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화와 정보화로 세계가 날로 좁아지고 각종 상품이 범람하는 상황에서 소비자권익보호는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현재 소비자의 권익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확립이 세계적인 추세다. 우리도 제도확립을 서둘러야 하겠지만 이를 도입할만한 사회기반이 조성됐느냐 하는 점에선 많은 의문이 남는다.
집단소송제, 리콜제와 함께 소비자권익보호의 한 축이라고 할 제조물책임(PL)법이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되고 있으나 기업과 소비자의 이해부족으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소비자의 이해도 부족하지만 기업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의 보험가입률은 23%정도에 머무르고 있고, 그나마 가입건수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에 대한 대비는 기업의 경쟁력 향상과 생존에 관계되는데도 그러하다.
소비자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PL법 정착부터 서둘러야 한다. “자기회사 제품은 문제없다”고 안이한 생각에 젖어 있는 기업가와 이 법을 기업을 괴롭히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소비자가 존재하는 풍토에선 집단소송제의 섣부른 도입은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기업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시간을 갖고 집단소송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기업의 충격을 완화하는 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
기업의 규모나 업종에 따라 도입시기를 달리하고 도입시기를 예고,기업에게 대비시간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기업도 이 제도의 도입을 두려워 해서만 안 된다. 원가부담 등이 늘어나겠지만 기업이 살아 남으려면 소비자 보호와 이에 따른 경쟁력 향상을 도모하는 책임경영이 필수적이다. 단계적 도입을 약속한 만큼 기업도 지금부터 소비자 집단소송시대에 대비해 `안전경영` 등 사내기반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안의식기자 esah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