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삼성 그룹의 신경영 10주년 기념 사장단 회의가 열린 신라호텔.
영빈관으로 들어서다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이건희 삼성 회장은 `마(魔)의 1만불 시대`라는 화두를 던졌다. “지금 우리 경제는 과거 선진국도 겪었던 `마의 1만불 시대 불경기` 상황처럼 일류 선진국으로 도약이냐, 남미형으로의 전락이냐는 기로에 서 있다”는 것.
이 같은 이 회장의 발언은 언뜻 `잔칫날`에 걸맞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신경영 제2기`를 맞은 삼성의 화두가 잘 녹아있다. “지금은 국민들이 당장의 제 몫 찾기보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돌입하기 위해 다 함께 노력해야 할 시기이며 삼성이 이에 앞장서겠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삼성의 앞으로 10년간 목표는
▲미래 사업 발굴
▲나라 위한 천재 육성
▲국가경제 경제 기여 등을 통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되기`로 요약된다.
◇신경영 10년의 성과= 이건희 회장이 지난 93년 6월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며 신경영을 선언한 이후 삼성은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성은 당시 `덩치 불리기`가 최고라는 인식을 `질 경영` 위주로 바꾸기 위해
▲이른바 7.4제로 알려진 조기 출ㆍ퇴근제
▲품질개선을 위한 라인스톱제
▲임원과 관리직의 현장근무제 등 새 제도들을 도입했다.
그 결과 지난해 삼성 매출액은 137조원으로 10년전보다 4배, 세전이익은 15조1,000억원으로 무려 66배나 늘어났다. 수출액은 317억 달러로 한국 전체 수출의 19.8%에 달한다. 주력 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시가총액이 430억 달러로 일본 소니를 앞질렀다. 브랜드 가치는 83억 달러로 세계 34위에 랭크됐다.
이 같은 신경영의 성과는 재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이건희 신드롬`은 불러오는 한편 외형 중시의 양적 사고를 품질ㆍ기술을 중시하는 질 중시 사고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삼성의 경쟁력은 회장의 오더십을 정점으로 구조조정본부 핵심 브레인과 관계사 경영진들이 양 축을 이루는 삼각편대 구조에서 나온다는 게 주된 평가”라고 설명했다.
◇“존경받는 기업이 되겠다”= 삼성은 이 같은 성과에도 국내외 경영 환경이 결코 자만해서는 안 될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이 회장은 “지금 선진국과 격차는 좁혀지지 않은 채 중국의 추격은 가속화하고 있어 자칫하다간 5~10년 뒤 우리가 먹고 살 산업이 바닥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삼성은 현재의 국가적 위기를 타개하고 새 성장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5~10년 뒤를 대비한 글로벌 인재 경영
▲세계1등 제품과 서비스 경쟁력 확보
▲미래 성장엔진 발굴을 통한 기회 선점
▲사회친화적 경영 등을 제2 신경영의 4대 핵심과제로 내놓고 있다.
이를 통해 2010년까지 세계 1등 제품 50개를 육성해 매출 270조원, 세전이익 30조원, 브랜드 가치 700억 달러의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것.
이 회장은 “특히 국가 차원에서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데 삼성이 적극 나서야 한다”며 “제2의 신경영은 `나라를 위한 천재 키우기`에 중점이 두어져야 한다”며 사장단들에게 인재 확보를 위해 직접 나설 것을 당부했다.
삼성은 이를 위해 천재급 인재 발굴 및 양성을 위한 투자를 적극 확대하고 매년 석ㆍ박사 인력 1,000명을 확보하는 한편 `엔지니어를 자존심을 세워주는 곳에서 일한다`는 지침 아래 미국ㆍ일본ㆍEU 등 주요 거점별로 첨단 연구소를 설립키로 했다. 또 지난해 9월에는 기금 5,000억원으로 `삼성 이건희 장학재단`을 설립, 아무런 조건 없이 우수 인재들에게 매년 100명을 지원하기로 했다.
삼성은 이와 함께 5~10년후에 대비한 핵심사업으로 유비쿼터스 헬스 캐어, 반도체, 소재부품, 스마트 홈 기반의 보안 및 네트워크 솔루션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아울러 생활용 로봇 사업과 함께 생명과학 분야에도 적극 투자하는 한편 중국 등 세계 경영도 가속화할 예정이다.
삼성그룹 CEO들
`신경영` 선언 10년을 맞은 거대선단 삼성그룹을 이끌어 나가는 글로벌 리더는 이건희 회장과 그를 밀착 보좌하는 삼성구조조정위원회다.
최근 삼성그룹 전체의 최고의사결정 협의기구인 구조조정위원회에 큰 변화가 생겼다. 올해 초까지 5인의 최고경영자(CEO)로 `5인방`에서 허태학 호텔신라 사장(현 삼성석유화학 사장)이 물러나고, 3명의 CEO가 새 멤버로 들어와 `7인방`체제로 확대 개편된 것이다.
이로써 구조조정위는 기존 멤버인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학수 삼성구조조정본부장, 배종렬 삼성물산 사장, 배정충 삼성생명 사장과 신임 위원으로 발탁된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 이윤우 삼성전자 다바이스솔루션네트워크 총괄 사장, 이상대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 등으로 새 진용을 갖췄다.
7명의 글로벌 리더들로 구성된 구조조정위는 비서실 출신과 계열사 출신 CEO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전자 경영 전체를 총괄하는 인물. 고 이병철 창업주 때부터 TV VCR 등 전자사업 현장을 지켰다. 66년에 입사해 69년부터 줄곧 삼성전자에 근무하면서 이 회사를 한국 대표기업으로 우뚝 세운 주역이다. 특히 이건희 회장의 `선문답(禪問答)`식 발언을 가장 잘 읽는 CEO로 평가받는다. 미국 그를 비즈니스위크는 2000년 세계 25대 CEO 중 한 사람으로 뽑았다.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은 비서실출신의 대표주자. 71년 제일모직에 입사한 이 본부장은 85년 비서실 이사로 자리를 옮긴 후 2년 반 정도 삼성화재 대표를 지낸 기간을 제외하면 줄곧 비서실과 구조조정본부를 지켰다. 노무현 대통령 부산상고 1년 선배인 이 본부장은 삼성화재 대표 때 노 대통령을 고문변호사로 위촉할 정도로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배정충 삼성생명 총괄사장은 실무에 정통한 영업통 CEO. 비서실을 거치지 않은 `현장파`의 대표주자다. 보험업계에서만 34년째 외길을 걸어오면서 삼성생명 경영혁신을 주도하는 배 사장은 삼성생명의 상장을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배종렬 삼성물산 사장은 90년대 들어 비서실(현 구조조정본부)에서 기획팀장 홍보팀장 비서실차장 등으로 일하며 93년 이건희 회장이 주창한 `신경영`을 정착시키는 실무를 맡았다. 배 사장은 제일 기획 사장 시절 외환위기로 광고업계가 불황에 빠졌을 때 특유한 추 진력으로 흑자경영을 일궈내는 뚝심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윤우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 네트워크 총괄 사장은 35년 동안 삼성 반도체 역사와 함께했다. 기흥공장장으로 일하던 80년대 중반 일본 업체의 덤핑공세와 반도체 경기침체기에도 과감하게 256KD램과 1메가D램 양산체제를 갖춰 삼성 반도체가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다졌다.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은 삼성 재무 인맥을 대표하는 CEO. 금융시장 흐름을 읽는 능력이 뛰어난 데다 국제감각까지 갖춰 삼성 금융계 열사를 책임질 최고경영자로 꼽힌다. 이건희 회장이 외국출장을 갈 때마다 세련된 통역솜씨를 선보이면서 신임을 한몸에 받고 있다.
이상대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은 주택시장에 브랜드 시대를 연 주인공. 78년 삼성종합건설에 몸담은 후 2000년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을 역임하면서 `래미안(來美安)`을 국내 최고 아파트 브랜드로 키워냈다.
구조위 7인의 CEO 중에서도 핵심참모는 윤종용 부회장과 이학수 사장. 구조위의 좌장격인 윤종용 부회장은 구조위 위원들의 의견이 상반될 때 중재자 역할을 하고, 이학수 사장은 각종 현안에 대한 이건희 회장 뜻을 구조위에 전달하고, 구조위에서 토론됐던 내용을 이 회장께 직접 보고하는 일을 맡는다.
<최형욱기자 choihu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