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책은 돌자갈처럼 흔하다… 보석을찾아야깊게만들수있어"<br>'월든' ' 걷기예찬' '희망의이유' 등 국내외 추천 도서 50권 소개
|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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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어느 겨울날, 나는 단박에 삭발을 결정하고 승복을 얻어 입었는데 그리도 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집을 떠나오기 전 나를 붙잡은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내 유일한 소유물인 책이었다. 책은 내게 끊기 힘든 인연이었다."
무소유의 삶을 설파하고 실천해오신 법정 스님은 당신에게 책이란 어떤 존재인지 이렇게 이야기 하곤 했다. 일체의 욕망에서 자유로웠던 스님이지만 유독 책에 대한 '미련'은 버리기 어려웠다 하시니 책에 대한 애착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만 하다.
지난 11일 성북구 길상사에서 입적한 법정 스님께서 생애 마지막으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책을 내놓고 우리 곁을 떠났다. 스님은 그 동안 '무소유' '오두막 편지' '산에는 꽃이 피네 '등 20여권이 넘는 저서로 대중 작가 못지 않은 인기를 얻었던 문인이다.
아쉽게도 이번엔 손수 집필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책과 그 책에 얽힌 이야기를 평소 가깝게 지낸 출판사 편집부 식구들의 도움으로 출간하게 됐다.
법정 스님이 택한 책은 모두 50권. 한 평생을 살아오면서 노승이 읽은 책들은 얼마나 될까. 옛말에 '오거서'(五車書)라는 말이 있지만 스님에겐 부족할 듯 싶다. 출판사 관계자는 50권을 골라 실었지만, 선정 작업도 오래 걸렸을 뿐 아니라 대상이 된 책들 또한 300여권에 달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최종 심사에 통과된 책들은 한 권 한 권이 '보석'처럼 빛을 발한다.
법정 스님은 "세상에 책은 돌자갈 처럼 흔하디 흔하다"면서 "그 돌자갈 속에서 보석을 찾아서 만나야 자신을 보다 깊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스님은 좋은 책의 조건에 대해서도 평소 품고 있던 생각을 이렇게 소개했다. "좋은 책은 세월이 결정한다.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책, 잠든 내 영혼을 불러일으켜 삶의 의미와 기쁨을 안겨 주는 그런 책은 수명이 길다."
추천된 책은 '월든' '걷기 예찬' '희망의 이유'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등 평소 스님의 철학과 맥을 같이 한다. 실천하는 지성과 조화롭고 평화로운 인생에 대한 가치를 추구하는 책들이다. 특히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제러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 빅터 프랭클린의 '죽음의 수용소' 등 환경ㆍ명상ㆍ인권 등과 관련된 책이 포함됐다.
국내 저서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남달랐다.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허균의 '숨어사는 즐거움' 윤구병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등 스님 자신과 같이 번잡한 속세를 떠나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행복을 누린 작가도 평소 아끼던 소장목록에 올랐다.
흥미롭게도 스님은 평소 동화책을 늘 곁에 두고 꺼내 읽으셨다. 바로 '어린 왕자' '꽃씨와 태양' '구멍가겟집 세 남매'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손때가 배도록 자주 펼쳐보셨다. 법정 스님은 "동화 '어린 왕자'에서는 바흐의 화음(和音)이 난다"며 "그 어떤 종교서적 못지않게 나를 흔들어 읽고 나면 숙연해진다"고 이야기한다.
국내 출판문화에 대한 스님의 '쓴 소리'는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 베스트셀러에 속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때 상업주의의 바람일 수도 있다."
끝으로 많은 독자들의 소망처럼 스님의 왕생극락을 기원한다. 1만8,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