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국가인정시스템 구축, 시험등 체계화해야"

9일 제1회 '세계인정의 날'<br>IT·환경 분야등 인증제 도입·전문 인력 육성 절실<br>휴대폰, 국내인정만으로 수출 가능 '年138억 절감'

시험기관의 성적에 대한 ‘상호인정’ 범위가 날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제품수출을 위한 시험성적표 인정부터 의료, 법과학, 정보기술, 환경 및 에너지 분야 등 신성장산업에 대한 인정제도 범위는 실생활과 깊이 연계돼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제품테스트에 대한 시험성적을 인정받지 못할 경우 수출 자체가 막힐 뿐더러 해당 국가로부터 별도의 테스트를 받아야 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국내에서 인증받은 인정서가 전세계에서 인정받을 경우 별도의 시험을 거치지 않아도 돼 편리함이 커진다. 기술표준원은 날로 중요해지는 인정제도를 이해ㆍ확산시키기 위해 ‘제1회 세계 인정의 날’을 맞아 세미나를 개최했다. 주제는 ‘신뢰(trust)’다. 세미나에 앞서 안의식 본지 차장 사회로 남인석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 원장을 비롯해 정수일 인하대 교수, 이원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소장, 한종만 대우조선해양 이사, 조기성 한국화학시험연구원 원장 등 전문가들과 함께 ‘인정제도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다음은 좌담회 내용. -‘세계 인정의 날’이 제1회인데 제정 배경 및 의의는 무엇인가. ▦남인석 기술표준원장=지난해 세계 인정 관련 기구인 국제시험기관인정협력체(ILAC)와 국제인정기구포럼(IAF)의 총회 결의로 올해부터 매년 6월9일을 ‘세계 인정의 날’로 공식 지정하기로 했다. 올해가 국가인정의 원년인 셈이다. 인정제도의 중요성은 물론 위상 제고, 인정제도의 국제동향 및 효과를 전파한다는 측면에서 앞으로 매우 중요한 행사가 될 것이다. -인정제도(Accreditation System)라는 말 자체가 일반인들에게는 낯설다. ▦정수일 교수=쉽게 이야기하자면 농산물이나 공산품 등을 수입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신뢰가 확보되는 수준의 제품 평가가 수반돼야 한다. 제품평가서는 사전에 제출되는데 이 같은 평가서를 작성하는 기관을 ‘인증기관(Certification Body)’이라 부른다. 인증기관은 먼저 국제표준화기구가 정한 일정한 기준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그 기준을 만족시킬 때 제품의 인증ㆍ시험ㆍ검사 등 관련 업무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일련의 행위를 서로 ‘인정’해준다는 의미에서 인정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인정제도가 세계무역에 미치는 영향도 클 수밖에 없을 텐데. ▦정 교수=인정제도의 범위는 매우 넓은데 일단 적합성제도만 놓고 이야기해보자. 적합성평가의 상호인정협정(MRA)이 이뤄져야 원만한 무역이 이뤄질 수 있는데 여기서 가장 기초적인 단계가 시험성적서의 상호인정이다. 제품을 수출하고자 할 때 상대방 국가의 표준이나 기술 기준에 의해 시험을 실시하고 성적서를 발행하면 그 결과를 상대국에서 인정해주는 행위다. 시험이나 분석을 상대국에서 대행시키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만약 상호인정협정이 체결돼 있지 않다면 수출국은 모든 시험이나 분석을 해당 국가가 지정한 인증기관에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ㆍ시간 등의 소모가 크다. 세계무역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이 사용하는 ‘CE(Conformite European Markㆍ단일마크)’가 대표적인 인정제도의 확대로 보면 되는지. ▦남 원장=그렇다. CE는 상호인정제도의 궁극적인 확대 사례다. EU는 시장단일화를 위해 시험성적ㆍ마킹ㆍ인증뿐만 아니라 단일표준을 사용하고 있다. 인증마크도 CE로 통일해 명실상부하게 시장 단일화를 이뤘다. -상호인정제도가 확산될 경우 어떤 이득이 있는가. ▦정 교수=만약 상호인정이 돼 있지 않다면 수출제품의 모든 시험테스트를 해당 국가가 지정한 곳에서만 해야 한다. 예컨대 미국으로 휴대폰을 수출할 경우 국내 시험기관에서 테스트를 하면 비용ㆍ시간 등이 절약되지만 이를 미국이 지정한 미국 내 기관에서 진행할 경우 어떻게 되겠는가.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지 가늠하기도 힘들며 수출을 앞두고 납품기한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도 숱하게 발생할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시험기관이 국제인정기구와의 상호인정협정을 체결하면서 산업에서 혜택을 본 긍정적인 효과도 많을 텐데. ▦한정만 대우조선 이사=시간ㆍ비용 측면에서 이득을 본 경우가 참 많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미국으로부터 대형 해양구조물을 수주, 건조했는데 미국은 해당 공사에 사용하는 전기 분야의 모든 계측기를 미국의 표준기관인 NIST로부터 직접 교정받을 것을 요구했다. 국내 시험기관의 제품인증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때부터 협상을 통해 미국 측을 설득해 미측이 한국의 공인성적서를 인정해주기로 했고 대우조선은 국내인정기관을 통해 해당 계측기를 모두 자체 교정받아 연간 120억원의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한국인정기구(KOLAS)라는 게 있지 않나. ▦남 원장=물론 있다. 국가 간의 상호인정을 통해 우리나라 공인시험기관이 발행하는 성적표가 국제공인인정서로서의 효과를 갖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국가 간의 상호인정이 확산돼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국내 기업은 세계무역을 위해 해외에 있는 시험기관만을 이용해야 한다. KOLAS는 세계무역에 있어 관문을 담당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다만 상호인정이 더 확산될 수 있도록 국내외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휴대폰의 경우에도 과거에는 해외에서 인정받아야 했다는데. ▦한 이사=그런 일이 있었다. KOLAS의 인정을 받기 전에는 해외 인증기관으로부터 제품인정을 받아야 했다. 휴대폰을 유럽으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영국은 영국통신기기승인위원회(BABT), 독일은 독일기술검사협회(TUV) 등의 인정기관으로부터 제품인정을 받아올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제는 KOLAS의 인정을 통해 국내 시험성적서로도 별도의 심사절차 없이 제품인증을 받아 수출이 가능하게 돼 연간 138억원의 해외시험 비용을 줄이고 있다. 사례는 또 있다. 오뚜기식품이 유럽시장에 진출하려 할 때 KOLAS의 공인성적서만을 갖고 진출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수출실적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EU는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를 도입한 뒤 화학물질 하나 하나의 테스트를 EU가 지정한 기관에서만 하도록 하고 있는데. ▦조기성 한국화학시험연구원 원장=올해 11월 말까지 화학물질을 사전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등록돼 있지 않을 경우 EU로의 수출은 막힌다. 문제는 등록을 위해서는 EU가 지정한 시험기관의 테스트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기관의 테스트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환경규제가 새로운 무역장벽이 되고 있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EU가 지정한 기관의 시험성적만을 요구하면서 국내 기업의 추가적인 시험평가 등에 따른 비용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한 대책은 마련하고 있는지. ▦조 원장=REACH와 관련한 EU의 행태는 국제상호인정체제를 역행하는 것이다. 국제 간 공조를 통해 이 같은 EU의 행태가 바뀔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화학시험연구원 등이 중심이 돼 EU가 규정하고 있는 표준 및 기술규정에 따른 시험평가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REACH의 고위험성물질 약 1,500종과 추가 확대 검토 중인 46개 RoHS(전기전자제품의 위험물질 사용제한) 규제항목에 대해 시험장비, 시설 확충 및 전문인력 양성 등의 시험평가 기반을 구축함과 동시에 국제공인시험기관으로서 인정받도록 할 예정이다. -설명을 듣다 보니 인정제도가 미치는 범위가 상당히 넓은 듯한데 떠들썩했던 서래마을 영아 살해사건에서도 당시 국제인정 등이 이슈가 되지 않았나. ▦이원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소장=맞다. 지난 2006년 사건인데 서래마을 영아 살해사건이 발생한 뒤 국과수가 현장에 있던 머리카락ㆍ칫솔 등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범인을 부모로 지목하자 프랑스 언론이 국내 기술을 무시하고 의혹을 제기했었다. 결국 프랑스 검사기관도 이를 재차 검증했지만 같은 결과가 나왔고 국내 유전자 감식기술에 대한 세계적인 명성과 위상을 얻었다. 2004년 국과수가 KOLAS로부터 국제공인시험기관으로 인정받았는데 KOLAS 성적만으로 우리나라 과학수사를 인정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인정제도의 범위가 날로 확산되고 있어 자칫 여기서 뒤처질 경우 발생할 손해도 클 듯 싶다. 인프라 등은 부족하지 않은지. ▦이 소장=인정제도는 이미 실생활과도 연관이 깊다. 의료, 법과학, 정보기술, 환경 및 에너지 분야 등 신성장산업에 대한 인정제도 도입이 매우 필요한 상황이다. 예컨대 법과학만 해도 그렇다. 유전자 감식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한국의 유전자 감식인원은 40여명으로 영국 1,500여명, 일본 1,000여명 등에 비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법과학뿐 아니라 모든 인정 분야의 인력양성, 제도정비, 시험전문인력 및 평가사 양성 등을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 -국내 인정제도의 발전 등이 신성장산업이 될 수도 있다는데. ▦남 원장=인정제도를 기반으로 한 시험기관 육성은 고부가가치를 낳는 서비스산업이다. 선진국의 경우 고용창출의 큰 축이 바로 인정제도다. 국내 적합성평가 업무를 총괄ㆍ조정하는 국가인정시스템을 마련해 교정ㆍ시험ㆍ검사, 시스템인증ㆍ제품인증 분야 등 인정기구 관련 사항을 좀 더 체계화시킬 필요가 있다. 동시에 선진국과 동등한 수준으로 국내 인정기구의 기능을 강화하고 제품인정의 활성화 및 서비스인증ㆍ인력인증 등 신규 인증 분야 인정체제도 도입해야 한다.
국제인정제도란
제품 테스트결과 국가간 상호인증
세계관련시장 규모…30조~40조원 달해


관련기사



#사례 1. 미국으로부터 대형 해양구조물을 수주한 대우조선해양은 난데없이 비상에 걸렸다. 미국이 구조물 건조과정에 사용되는 전기 분야의 모든 계측기를 미국 표준기관인 NIST로부터 직접 교정받을 것을 요구한 것. 사용되는 모든 계측기를 미국 내 시험연구기관으로부터 시험성적표를 받아오기까지는 물리적인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 납기를 맞추는 것은 고사하고 추가비용으로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구세군으로 등장한 게 한국인정기구(KOLAS)다. 세계인정기구의 양대 산맥인 국제시험기관인정협력체(ILAC)와 국제인정기구포럼(IAF)으로부터 인정받은 자료를 가지고 미국 측을 설득한 결과 KOLAS의 공인성적표를 인정받았고 해당 계측기 전량을 대우조선에서 자체 교정할 수 있도록 해 성공적으로 공사를 마쳤다. 물론 대우조선해양은 이로 인해 매년 120억원의 교정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사례 2. 유럽연합(EU)으로 제품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EU가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를 도입하면서 올해 11월 말까지 EU가 지정한 등록기관에서 화학물질을 실험한 뒤 사전등록하도록 했기 때문. 사전등록을 해야 하는 제품의 대(對) EU 수출액은 최소 21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등록하지 않을 경우 EU로의 수출이 막히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막대한 비용을 들여 EU 내에 위치한 시험기관에 테스트를 의뢰하고 있다. 테스트에 들어가는 비용도 막대할 뿐더러 시간도 많이 소요돼 국내 기업에는 부담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의 REACH 등록비용은 7조8,000억원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는 2조5,000억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낯선 용어지만 국가 간 인정제도(Accreditation System)는 세계무역에서 새로운 무역장벽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자유무역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제품테스트 결과에 대한 인정부터 자격증ㆍ시험성적표ㆍ분석결과물 등에 대한 인정까지 범주는 매우 넓다. 이는 국가 간 상호인정을 받느냐에 따라 거기에서 발생하는 비용ㆍ효용성 등이 막대하다는 것을 뜻한다. 인정제도의 태동은 지난 194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주 정부는 서로 다른 시험ㆍ검사기관의 시험결과 비교와 측정의 신뢰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험ㆍ검사기관 인증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이후 호주 정부가 1947년 국립시험소 인정기관을 발족한 뒤 군납제품에 대한 철저한 품질관리를 한 게 그 배경이다. 인정제도와 관련된 국제기구로는 시험ㆍ교정ㆍ검사 등을 다루는 국제시험기관인정협력체(ILACㆍInternational Laboratory Accreditation Cooperation)와 제품인증ㆍ시스템인증 등을 다루고 있는 국제인정기구(IAFㆍInternational Accreditation Forum) 등이 있다. ILAC는 ILAC-MRA(상호인정협정) 정회원만 46개국 58개 기구에 달하고 IAF는 정회원이 38개국, 40개 기구에 이른다. 적합성평가가 공정히 이뤄지고 국제적인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를 평가하는 기관의 수준이 전세계적으로 유사하거나 같아야 하고, 이를 위해 인증기관은 국제표준화기구가 정한 일정한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제기구 2곳 모두에 가입돼 있다. 현재 국가 간 상호인정의 범위를 지속적으로 넓혀가고 있는 상태다. 세계 인정제도에 연관된 시장 규모는 30조~4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들이 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국가 간 상호인정 문제를 심층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경제적 문제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인석 기술표준원 원장은 "일부 국가는 기술유출 등을 우려해 자국의 시험소만을 인정하고 있다"면서 "이는 비용뿐 아니라 기술유출에 대한 우려도 있기 때문인데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비관세 장벽을 제거하려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