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대학혁신이 살 길이다

류지성 <삼성경제硏 수석연구원>

요즘 대학가는 통폐합, 구조조정, 정원 감축 등으로 어수선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것은 경제논리를 따지는 기업이나 하는 것이고 신성한 상아탑에서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며 심지어 그런 단어 자체를 불경스럽다고 여겼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한번 짚어봐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아직도 많은 대학 구성원들이 이런 상황을 단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대세’쯤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학생·기업·사회가 학교의 고객 이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을 예로 들면 경제 상황이 나쁘거나 실적이 악화돼 구조조정을 하는 경우 단지 생존만을 목적으로 하면 결코 살아남지 못한다. 기업 세계는 전쟁과 다름없어서 구조조정이라는 수술 자체보다는 다른 기업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경쟁 수단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고객을 만족시키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구조조정과 병행해 전략을 세우고 혁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대학 공급 과잉(학생 부족)시대이기 때문에 수많은 경쟁자들이 학생과 재정을 채우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하고 있다. 대학이 더 이상 학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자기의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주는 대학을 선택한다. 기업도 자기의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 대학만을 선택해 재정적인 투자를 하고 지원한다. 이런 점에서 대학이 구조조정이나 통폐합만 하면 학생도 오고 기업도 연구지원금을 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지금이야말로 대학은 소위 고객에게 ‘선택받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면 대학은 어떻게 선택받을 수 있는가. 그것은 학생ㆍ기업ㆍ사회 등의 수요자에게 다른 대학과는 무엇인가 다른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경쟁 우위 확보를 위해 고민하고 있는 기업 경영의 용어로 표현하면 시장에서 차별화된 전략적 포지셔닝(positioning)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대학이 선택할 수 있는 차별화 전략의 축은 대략 세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연구 중심 대학으로 갈 것인가, 또는 교육 중심 대학으로 갈 것인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전자는 지식 창조와 발견에 초점을 둔 연구, 세계 수준의 연구로 학교의 명성을 구축하고 우수 학생을 유치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후자는 지식 전달을 위한 연구에 초점을 둬 무엇보다 강의 역량을 중요하게 평가하고 좋은 교육을 받고 성공한 동문들에 의해 구축된 명성으로 학생을 유치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둘째, 종합대학을 지향할 것인가, 또는 집중화대학, 즉 공학이나 시장성이 있는 소수 전공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종합대학이 너무 많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집중화대학으로의 전략 선택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지방에 있지만 일류대학 못지않은 우수 학생이 몰려드는 한동대학이나 한국 최고를 넘어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포항공대가 집중화대학의 참고할 만한 성공사례다. 셋째, 전국을 기반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지역을 기반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이것은 수도권과 지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소재지와 관계없이 연구와 교육에 대해 어느 대학과 경쟁해야 할지, 어느 정도의 지역 범위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향후는 지역균형발전시대를 맞아 소재 지역에 비전을 심어주는 이른 바 지역밀착형 대학 생태계를 주도하는 역할을 하는 지역기반대학이 경쟁우위를 확보할 가능성이 더 많다. 교육시장서 전략 차별화 필요 부산의 전략 산업인 미디어ㆍ영상을 중심으로 연구개발(R&D)과 비즈니스를 선도하는 동서대학이나, 수도권에 있지만 시흥공단에 필요한 기술 인력과 연구개발을 주도해 성공적인 대학 운영을 하고 있는 한국산업기술대학이 본받을 만한 사례다. 차별화 전략은 대학이 한두 가지를 선택해서 특성화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이것은 대학이 학생ㆍ기업ㆍ사회 등의 고객을 잘 살펴보고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대학 전체의 전략적 행동이다. 대학 구성원 전체가 여기에 헌신해야 하고 학제와 커리큘럼, 행정, 교수업적 평가와 보상 등 대학 운영시스템 자체가 전략에 적합하게 변혁돼야 한다. 물론 이들 중에서 변화의 핵심 성공요인을 꼽으라면 단연코 총장의 혁신 리더십과 교수들의 연구와 교육에 대한 경쟁시스템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