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월28일] 샤를마뉴

[오늘의 경제소사/1월28일] 샤를마뉴 권홍우 편집위원 샤를(Charles). 유럽 왕들이 가장 선호한 이름이다. 찰스며 칼ㆍ카를로스…. 언어만 다를 뿐이다. 왜 그럴까. 샤를마뉴(Charlemagneㆍ샤를 대제) 때문이다. 누구나 닮고 싶어했던 샤를마뉴는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처음으로 유럽을 통일한 인물. 프랑스와 독일의 공동 조상이다. 스페인과 북부 이탈리아도 그를 시조로 여긴다. 768년 왕위에 오른 그의 초기 사업은 정복. 아랍의 침입을 피레네 산맥에서 막아낸 할아버지 칼 마르텔과 직접 왕좌를 차지한 아버지 피핀의 업적을 기반으로 정복에 나섰다. 등극 20여년 만에 그는 북유럽과 동로마제국ㆍ영국을 제외한 전유럽을 석권했다. 로마도 정복을 포기한 라인강 넘어 게르마니아까지 수중에 넣은 그의 이데올로기는 기독교. 정복지에는 관대했어도 이교도에게는 관용을 몰라 유럽은 기독교로 합쳐졌다. 감격한 교황은 그를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올렸다. 샤를마뉴는 다방면에서 업적을 남겼다. 부족의 관습을 모아 성문법을 만들고 학문을 장려해 그의 치세는 ‘카롤링거의 르네상스’로 불린다. 화폐개혁에도 손을 대 리브르 금화를 표준화폐로 정했다. 공작ㆍ백작ㆍ후작ㆍ자작ㆍ남작 등 귀족제도와 봉건영주국가의 기원도 샤를마뉴부터다. 손이 귀해 자손이 끊겼으나 각국 왕실은 앞 다퉈 후계자를 자처했다. 나폴레옹도 황제에 오를 때 ‘샤를마뉴의 진정한 후손’이라는 점을 명분으로 꾸몄다. 샤를마뉴 사망(814년 1월28일) 후 수많은 세월이 흐르고 봉건국가도 사라졌지만 그 영향력은 여전하다. 살아 있는 샤를마뉴의 상징은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EU) 본부 빌딩. EU는 2004년 신축된 본부 건물의 이름을 주저 없이 샤를마뉴로 골랐다. 유럽 통합의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입력시간 : 2006/01/2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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