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을 흔히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한반도의 중앙부 평야지대를 흐르는 한강 하류는 신석기시대부터 문화발달의 터전이었으며 삼국시대 이래 쟁패의 요지였다.
특히 조선시대 태조가 이곳에 도읍을 정하면서 정치ㆍ경제ㆍ문화의 중심지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도 한가운데를 한강처럼 수량이 풍부한 큰 강이 흐르는 도시는 찾기 쉽지 않다.
그래서 서울은 축복받은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첫 유료도로로 한강 개발의 시발점이 된 강변1로가 1967년 9월23일 개통됐다.
영등포와 노량진을 한강변으로 잇는 4차선 고속도로인 강변1로는 그해 3월 착공, 3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돼 완공됐다.
강변1로는 서울시가 한강변 개발을 위한 첫 단계로 성사시킨 공사였다.
당시 군용지였던 여의도 개발도 이 도로의 개통과 함께 시작됐다.
차선 3.5m, 도로폭 20m, 총연장 3.72㎞이며 제한속도는 70㎞였다.
이 도로 개통 전 영등포에서 노량진까지의 거리는 4㎞, 제한속도는 35㎞, 주행시간은 6분50초로 신호대기 시간까지 합치면 9분40초가 소요됐다.
반면 강변로는 통행료를 내기 위한 지체시간 20초를 합쳐도 3분30초면 충분해 6분10초나 단축됐다. 통행료라는 것을 내본 적이 없었던 까닭에 요금 문제로 종종 시비가 일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 생긴 산뜻한 길을, 그것도 강변을 끼고 달리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맛을 느끼게 했다.
통행료는 승용차 20원, 버스와 화물차 30원, 오토바이 10원, 특수차량은 100원이었다.
서울시가 통행료를 발표하자 여론은 비싸다며 부정적이었다. 당시 버스요금이 8원이었으니 비싸다는 불만이 나올 만도 했다.
아무튼 강변1로는 난지도에서 팔당에 이르는 한강 양변 57㎞의 강변도로 건설의 시발점이 됐다.
/박민수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