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5월7일] 샐먼 체이스


돈, 돈, 돈! 남북전쟁에는 돈이 하염없이 들어갔다. 전쟁 직전 17만2,000달러였던 연방정부의 하루 지출액이 순식간에 150만달러까지 올라갔으니까. 북부는 물론 남부도 돈을 구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결과는 극심한 물가상승. 남부는 800% 넘는 물가고에 경제기반이 무너졌다. 반면 북부는 인플레이션을 75%선에서 틀어막았다.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남부보다 인구가 많고 제조업 기반을 갖추고 있었던데다 효율적인 금융 시스템이 존재했던 덕이다. 북부 금융의 구심점은 샐먼 체이스(Salmon P Chase) 재무장관. 공화당 후보 선출전에서는 링컨보다 앞섰던 인물이다. 링컨의 간청으로 재무장관직을 맡은 후 전쟁이 터지자 그는 미국 최초로 소득세를 도입하고 불태환지폐 ‘그린백(Greenback)’을 발행했다. 지폐와 동전에 ‘In God We Trust(우리는 신을 믿는다)’라는 문구를 새겨 넣은 주인공도 체이스다. 최대 업적은 국채 발행. 은행가인 제이 쿡의 도움으로 연방정부 채권을 찍어내 전쟁비용의 70%를 충당했다. 남부도 이를 흉내냈지만 조달액수는 무시할 정도의 수준에 그치고 결국 무너졌다. 금융 시스템이 전쟁 결과를 가른 것이다. 막상 체이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갤브레이스는 ‘그가 한 일은 지폐를 찍어내라고 지시한 것뿐’이라는 혹평을 내렸다. 당시에는 더 나쁜 평가도 받았다. 차기 선거에 나서려고 링컨을 끊임없이 음해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링컨은 배반한 체이스를 버리지 않고 대법원장에 앉혔다. 덕분에 1873년 5월7일 65세로 사망할 때까지 대법원장으로 봉직할 수 있었다. 링컨이 있었기에 기억되는 셈이다. 링컨이 보여준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미국도, 월가도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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